장항준 감독은 천만 관객의 사랑을 "거대한 몰래카메라 같다"고 표현하며, 기쁨과 동시에 부담감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왜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역사의 구석,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가야 했는지 창작 의도를 자세히 들려줘요. 마지막엔 과거 '황당 인터뷰'의 대표 질문인 "ET는 어디서 사셨나요?"를 다시 받으며, 장항준식 유머와 태도를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1. 천만 감독이 된 요즘 기분: "거대한 몰래카메라 한복판 같아요" ☕️
인터뷰는 JTBC 뉴스룸에서 진행자 안나경 앵커가 장항준 감독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천만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든 감독을 초대한 자리였고, 안나경 앵커가 축하 인사를 건네자 장항준 감독은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합니다.
요즘 기분을 묻자, 그는 기쁨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 "현실감이 없다"는 쪽에 더 가까운 표현을 내놓습니다.
"거대한 몰래카메라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되게 비현실적이고요."
그는 이 상황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놀라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특히 영화 개봉 전, 딸과 나눈 대화가 인상적으로 나오는데요. 딸이 손익분기점을 묻자, 당시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이 컸다고 해요.
"그만큼 극장 상황이 안 좋았어서 많이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감독이 된 뒤에도 "이런 날"을 꿈꿨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없다"고 답합니다. 대신 현실적인 감독의 고민을 꺼내죠. 영화감독은 정년이 없고, 그래서 늘 다음 일을 걱정하게 된다고요.
"감독이 된 다음에는 '올해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제가 내 마지막 작품이 될까'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하겠죠."
그리고 지금 가장 무서운 상상은, 모든 게 꿈처럼 깨는 순간이라고 말해 웃음을 줍니다.
"가장 걱정하는 거는… 으악 하고 일어났는데 '꿈이야…'"
이야기 흐름은 그가 시민들에게 커피 이벤트를 하고 온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렸고, 현장 통제 인력까지 꽤 있었다고 말해요. 그 정도의 열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창원에서도 오시고, 대구에서도 오시고… 전국에서 오셨더라고요."
안나경 앵커가 "선거 유세급" 분위기였다고 하자, 장항준 감독은 겸연쩍게 웃으며 오래가진 않을 거라고 농담합니다.
"뭐 오래 가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2. 가족은 왜 안 울었을까: "영화 보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어요" 🎬
대중은 영화에 울었는데, 정작 가족들은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흥미롭게 바뀝니다. 더 놀라운 건, 장항준 감독 본인도 영화 보며 운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왜 그런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이번 영화는 후반 작업 중에 감정이 올라와 "찔끔" 정도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울컥하게 만든 건 음악과 엄흥도(흥도)가 만들어낸 감정의 결합이었다고 설명하죠.
"음악하고… 흥도가 만들어낸 감정의 매치가 너무 확 가슴을 후파하는 게 있어서… 그때 좀 찔끔했고."
그런데 정작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는 건 영화가 아니라 관찰형 예능(다큐 같은 예능)이었다고 해요. 배우 배정남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찾아가는 예능을 보며 많이 울었다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굉장히 막 울었던 것 같아요."
3. '왕과 사는 남자' 비하인드: 기록 없는 600년을, 백성의 마음으로 채우다
안나경 앵커가 영화 속 장면 중 백성들이 (작중 상징물처럼) "봇짐을 던져 주는 장면"이 슬펐다고 하자, 장항준 감독은 그 장면이 사실 공식 기록에는 없는 영역에서 출발했다고 말합니다. 단종이 유배된 뒤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거죠.
대신 그는 야사나 지방사에 남은 이야기를 가져옵니다. 영월 백성들이 단종이 죽은 뒤, 집집마다 몰래 제사를 지냈고, 무덤의 위치를 알고도 세조의 감시를 피해 숨겼다는 전승이 있다고 해요. 그 은폐가 2~300년 동안 이어졌다는 설명은 영화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영월 사람들은… 왕의 무덤인지 알면서 다들 숨겼다고… 그걸 2~300년 동안 한 거예요."
그래서 장항준 감독은, 영화 속에서 영월 사람들이 기다리던 어떤 존재(상징)가 600년이 지나 '지금'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찾아주는 지금의 상황이 그 연장선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영월 사람들 기다리던 당나귀가 600년이 지나서 지금 오는 거야."
진행자 역시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나온 고성 화암사를 직접 찾아가 봤다고 말하며, 관객들이 촬영지를 찾아가는 열풍도 자연스럽게 언급됩니다. 장항준 감독은 곧 열릴 단종제에도 가겠다고 답합니다.
4. "왜 내가 해야 했나"에 대한 답: 스펙터클이 아닌 '폐위된 뒤의 뒷모습' 😌
안나경 앵커는 장항준 감독이 스스로에게 자주 던진다는 질문 3가지를 한 번에 꺼냅니다. "왜 이 시기에 만들어져야 하나", "왜 다른 감독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나",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나" 같은 질문들이죠.
장항준 감독은 웃으며 "세 개를 동시에 던지셨다"고 받아치고, 그중 "왜 내가 해야 했나"를 중심으로 답합니다. 그는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계유정난까지라고 짚어요. 암투, 무력 대결 같은 스펙터클은 관객이 큰 스크린에서 기대하는 영역이고, 이미 잘 만들어진 작품들도 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들은 계유정난까지예요… 관객들이 큰 스크린에서 보고자 하는 것들은 거기까지거든요."
하지만 그는 그 뒤의 이야기, 즉 폐위된 왕의 뒷모습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관심을 덜 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건 그 뒤편, 더 조용한 방향이었다고요.
"폐자의 뒷모습은 아무도 기록하려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는 서민들, 백성들의 이야기가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관심 있는… 서민들 얘기, 백성들의 얘기… 그 이야기는 제가 조금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5. '구석에 마음을 주는 아이' 장항준: 안 되는 문방구, 밀어주던 세발자전거
진행자가 예전 인터뷰들을 언급하며, 장항준 감독이 "가운데보다 구석에 마음을 준다"는 특징을 짚자, 그는 크게 공감합니다. 학창 시절에도 잘되는 문방구가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옆 문방구에 일부러 갔다고 해요.
"애들이 다 가는 문방구는 안 갔어요… 아무도 안 가는 문방구가 있는 거예요. 맨날 거기서 샀어요."
그러면서도 왜 안 되는지는 알겠다고 농담합니다. 물건에 하자가 있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는 말로, 장항준식 관찰과 유머가 동시에 드러나죠.
"왜 안 되는지는 알겠더라고요. 물건이 조금씩 하자가 있어요."
또 어린 시절 세발자전거를 사줬을 때, 자신이 타기보다 친구들을 태워주고 계속 밀어줬다는 어머니의 기억도 이어집니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좀 다르다"고 느꼈다는 말은, 장항준 감독이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과 연결됩니다.
"제가 '다음엔 네가 타' 하면서 애들을 밀어주고 있더라는 거예요… 하루 종일."
진행자는 그런 마음이 영화에 녹아 인간미 있고 따뜻한 감성으로 느껴진다고 말하고, 장항준 감독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해 웃음을 줍니다.
"어떤 실력의 빈틈을 인간미로 메운다."
6. 감독의 리더십과 현장, 그리고 흥도의 '갈등 라인'이 바뀐 이유
장항준 감독은 영화가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감독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스태프, 같은 배우여도 감독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고요.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최고의 실력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최고의 실력들을 발휘하게 해 주는 게 감독의 중요한 역할."
이번 현장도 배우들이 "좋았다"고 말할 정도였고, 촬영 중 스태프들과 나눴다는 말이 꽤 진하게 남습니다.
"다시는 안 온다, 이 시절이… 그래서 즐기자."
촬영이 끝나면 영월 동강 근처 숙소에서 강을 보며 술을 마시고, 다음날을 쉬기도 했던 기억이 행복하게 언급됩니다. '일'이면서 동시에 '삶'이 되는 순간이었던 셈이죠.
이후 대화는 시나리오 수정으로 넘어갑니다. 장항준 감독은 특히 엄흥도(흥도)의 갈등 라인을 가장 많이 바꿨다고 말합니다. 원안에는 갈등 줄기가 약했는데, 영화의 핵심이 되려면 흥도가 선택의 벼랑에 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핵심 질문은 이겁니다: 살기 위해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어린 왕을 지킬 것인가.
"흥도가 갈등해야 되거든요. '살기 위해서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저 불쌍한 어린 왕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장항준 감독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장면들은 거창한 정치 장면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흥도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글을 가르치고, 관계가 쌓이는 순간들이었다고 합니다. 권력을 잃고 외지로 온 단종이, 그곳에서 비로소 "왜 왕이어야 하는지"를 배운다고 해석하죠.
"여기 와서 보니까 내가 왜 왕이어야 하는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운다고 생각했어요."
진행자가 "감독님이 흥도였다면 어땠을까요?"라고 묻자, 장항준 감독은 솔직하게 "관아에 갔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삼족을 멸한다는 공포 앞에서 평범한 사람은 쉽게 영웅적 선택을 못 한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그 대목에서 독립투사들을 존경하는 이유도 함께 말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못 하죠."
7. 600년을 건네는 한마디, 가장 확신한 장면, 그리고 윤종신에게
"600년이 지나 흥도(엄흥도)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장항준 감독은 감사의 마음을 정중하게 전합니다. 후세가 그 '의'를 되새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후세들이 어르신의 의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여러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러다 "찍으면서 영화가 생각보다 잘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준 장면이 있었다고 말해요. 단종이 길을 떠나는 걸 막으려던 흥도가, 관아 앞에서 갈등하는 표정이 결정적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관아 쪽을 보고 다시 자기가 온 길을 보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흥도의 표정… '아, 영화 생각보다 잘 될 수 있겠구나.'"
그 이유도 명확합니다. 관객은 결국 흥도의 시선으로 단종을 보기 때문에, 흥도의 죄책감과 연민, 기대가 그 장면에 응축돼 있다는 거죠.
"사람들은 흥도의 시선으로 보거든요… 그 장면이 연출적으로 쾌감을 불러일으켰던 장면."
이후 '절친' 윤종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윤종신이 장항준 감독을 두고 "분수에 넘치는 행운이 오면 망할 것"이라고 농담했다는 말을 전하자, 장항준 감독은 특유의 유머로 받아칩니다.
"덕담 고맙다."
힘들 때 "누워 있어"라고 했더니 "너의 현실과 똑같구나"라고 받아친 일화도 덧붙이며, 윤종신이 어려웠던 시절 부부에게 큰 힘이 된 고마운 친구라고 말합니다.
8. 일할 때의 소신: "악당과는 같은 공기를 마시지 말자" + 타고나는 긍정 🧭
진행자가 "삶의 태도가 영화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하자, 장항준 감독은 '가치관' 전체를 거창하게 정의하진 않지만, 일할 때의 원칙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인터뷰 전체에서 가장 날카롭게 꽂힙니다.
"악당하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 말자."
"아무리 특출난 재능이 있어도 나쁜 놈이랑 일하지 말자."
가끔은 어쩔 수 없이 까다롭거나 나쁜 사람들과 일해야 할 때도 있지만, 굳이 그런 관계에 청춘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해요. 일하는 시간도 인생의 일부이니, 결국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리됩니다.
"우리가 일하는 시간도 우리 인생의 일부잖아요. 우리가 행복해야죠."
또 "인생을 여름방학처럼 살고 싶다"는 말, 이른바 '항준적 사고'가 타고난 거냐는 질문에는 꽤 단호하게 "타고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캐릭터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교육은 조율일 뿐이라는 설명도 이어집니다.
"거의 70%는 바꿀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엄마를 닮았다고 말하면서, 아주 먼 옛날부터 긍정적인 유전자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까지 덧붙여 분위기를 풀어줍니다.
"오늘 맘모스 못 잡아도 괜찮아… 이런 유인원이 있었겠죠."
9. 천만 이후의 부담, 30년 전 시나리오, 그리고 "오래 하는 게 목표" 📚
진행자가 "천만 감독이 되며 부담감이 생기지 않냐"고 묻자, 장항준 감독은 즉답합니다.
"너무 부담스럽죠."
뉴스에 나오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예전엔 뉴스를 보며 남을 평가(?)하는 재미로 살았다는 농담도 합니다. 이제는 자신이 주목받는 위치에 서면서 "따뜻하고 온화하고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는 시선이 어색하다고 말해요. 본인이 원했던 캐릭터는 그게 아니었다는 거죠.
이후 30년 전 초기작 '뛰다가 생각이 나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김은희 작가(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글이고, 장항준 감독 본인도 20대에 썼던 시나리오라고 해요. 영화화될 뻔도 했지만 여러 이유로 무산됐고, 최근(며칠 전) 아내와 "다시 만들면 어떨까"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제가 20대 때 썼던 시나리오인데… 불과 2~3일 전에 같이 그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영화로는 아니더라도 책으로라도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은퇴하면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답합니다. 소설은 날씨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직업이라며, 문장 하나로 '눈부신 오후 햇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죠.
"제 맘대로 그 날이 흐려도 밝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잖아요."
'뛰다가 생각이 나면'의 내용은, 일반인 마라톤 참가자가 달리며 인생을 회고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는 이야기라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촬영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디렉터스 체어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아직 살아 있구나"를 느끼게 한다고요.
"그럴 때가 제일 행복하죠. '아직 살아 있구나.'"
최종 목표를 묻자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상이나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냥 오래 하는 것.
"오래 하는 거요."
"천만 한 편 vs 평생 200만씩"을 고르면 대부분 감독이 후자를 택할 거라며, 자신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결국 "내가 즐겁게 재밌는 일을 하고, 사람들이 사랑해 주면 좋겠다"는 쪽으로 귀결됩니다.
10. 꿈꾸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10분의 1은 자기 맘대로 살 권리가 있어요" + ET 질문의 귀환 🤭
1988년 영화 '썸머 스토리' 티켓을 보물처럼 간직했던 경험을 꺼내며, 지금도 영화표를 모으고 꿈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어려운 얘기"라며 조심스럽게, 하지만 현실적이고 따뜻한 조언을 건넵니다.
그가 제시하는 핵심은 '올인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에 10분의 1은 자기 맘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10년이 아니어도 5~6년만 끝까지 매진해보라고 말하고, 길이 안 열리면 틀면 된다고 덧붙입니다. 100세 시대이니 방향 전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관점이죠.
"노력해 보시면 또 좋은 길이 열리지 않을까… 안 열리면 틀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진행자는 "꼭 드리고 싶었던 질문"이라며 장항준 감독을 웃게 만든 전설의 질문을 꺼냅니다. 80년대 최고의 영화로 불리는 'ET'를 언급한 뒤, 바로 이렇게 묻습니다.
"ET는 어디서 사신 겁니까?"
장항준 감독은 이 질문이 사실 자신이 24~25살 무렵 방송 작가로 참여하고 출연도 했던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른바 '황당 인터뷰'의 대표 질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왜 그런 질문을 썼냐는 물음에는 아주 솔직한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재밌게 하려고."
당시 시민들은 다 '뉴스'라고 믿는 분위기였고, 인터뷰 끝나고 "예능입니다"라고 밝혀도 처음엔 납득을 못 했다는 시대 분위기도 덧붙이며, 그 시절의 순수함(?)이 만들어낸 웃음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마무리
이 인터뷰에서 장항준 감독은 천만의 환희를 자랑하기보다, 그 뒤에 따라오는 비현실감과 부담, 그리고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과 현장의 가치를 더 또렷하게 말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역시 거대한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역사의 구석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기에 관객에게 더 깊이 닿았다는 걸 확인하게 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장항준다운 결론은 하나로 모입니다: 재밌게,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