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로그래밍, 수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관통하는 '좋은 안목(Taste)'과 디자인의 객관적 원칙들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취향은 결코 단순한 주관적 선호가 아니며, 훌륭한 창작을 위해서는 단순함, 시대 초월성, 자연스러움 같은 공통의 원칙을 이해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위대한 작업물은 기존의 '추함'을 찾아내는 예민한 안목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창작자의 치열한 노력에서 탄생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1. 안목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거부하게 된 필수적인 동기 중 하나는 [이심원에 대한] 그의 미학적인 반대였다...."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
"우리 모두는 켈리 존슨에게 훈련받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비행기가 나는 모습도 똑같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광적으로 믿었다." - 벤 리치, 스컹크 웍스
"아름다움이 첫 번째 기준이다. 이 세상에 추한 수학이 영원히 머물 자리는 없다." - G. H. 하디, 어느 수학자의 변명
최근 MIT에서 가르치는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분야는 요즘 아주 인기가 많아서 매년 대학원생 지원서가 쏟아진다고 해요. 친구는 지원자들이 똑똑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안목(Taste)'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습니다. 🧐
요즘은 '안목'이나 '취향'이라는 단어를 예전만큼 자주 듣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뭐라 부르든, 그 기저에 있는 개념은 여전히 중요해요. 제 친구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그저 기술적으로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적 지식을 활용해 아름다운 것(beautiful things)을 설계할 줄 아는 학생이었으니까요.
수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 엔지니어,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화가들 역시 훌륭한 작업물을 두고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이들이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우연일까요? 만약 각 분야가 말하는 아름다움에 교집합이 있다면, 우리는 한 분야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원리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들에게 이는 단순한 이론적 질문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아주 실용적이고 중요한 질문이죠. 🎨
2. 취향은 정말 주관적일까?
요즘 사람들에게 안목이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면, 열이면 열 "취향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할 때 그 이유를 정확히 모릅니다. 정말 아름다워서일 수도 있고, 어릴 적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이라서, 혹은 잡지에서 유명한 배우가 쓰는 걸 봐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검증되지 않은 충동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태와 같아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복잡한 충동을 굳이 파헤치지 말라고 격려받으며 자랍니다. 동생이 색칠 공부 책에 사람을 초록색으로 칠한다고 놀리면, 어머니는 으레 "너는 네 방식대로 하는 걸 좋아하고, 동생은 동생 방식대로 하는 걸 좋아하는 거야"라고 타이르시죠. 이때 어머니는 미학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이 다투는 것을 멈추고 싶으셨을 뿐이죠. 😅
어른들이 해주는 많은 반쪽짜리 진실들이 그렇듯, 이 말은 그들이 하는 다른 말들과 모순됩니다. 취향은 그저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놓고서는, 박물관에 데려가서는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예술가니까 주의 깊게 보렴"이라고 말하니까요. 수년간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배워온 아이는, 위대한 예술가가 남들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든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책에서 누군가 그렇다고 했으니 브로콜리처럼 자신에게 '좋은 것'일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취향이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라는 말은 논쟁을 피하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무언가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보기 시작하면 이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잘하고 싶어 합니다. 축구 선수는 경기에 이기고 싶어 하고, CEO는 수익을 올리고 싶어 하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의 직업이 무언가를 설계하는 일인데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실력을 향상시킬 방법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취향이 그저 주관적인 것이라면 모두의 취향은 이미 완벽한 상태일 테니까요.
하지만 디자인을 계속하다 보면 누구나 실력이 늡니다. 취향도 변하죠.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 과거의 내 취향은 단지 '달랐던 것'이 아니라 '더 나빴던 것'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취향에는 틀린 것이 없다"는 명제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입니다.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면, 비로소 '좋은 디자인'에 대해 세밀하게 공부할 수 있는 문이 열립니다. 🚪
3. 좋은 디자인이 공유하는 14가지 원칙
이 질문을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면, 서로 다른 분야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놀라게 됩니다. 훌륭한 디자인의 원칙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1. 좋은 디자인은 단순하다 (Simple)
수학에서부터 그림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듣게 되는 말입니다. 수학에서 짧은 증명은 더 나은 증명을 의미합니다. 프로그래밍에서도 마찬가지죠. 건축과 디자인에서 아름다움이란 피상적이고 화려한 장식들이 아니라, 신중하게 선택된 소수의 구조적 요소들에 의존해야 합니다. 글쓰기에서도 자신이 뜻하는 바를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 사람들은 종종 화려한 장식이나 현학적인 말투 뒤로 숨으려 합니다. 내면의 실체가 부족하다는 두려움 때문이죠. 하지만 단순해지도록 스스로를 강제할 때, 우리는 진짜 문제와 직면하게 됩니다. 장식으로 승부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알맹이를 내놓아야 하니까요.
2. 좋은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한다 (Timeless)
어떤 것이 추하다면 그것은 최선의 해결책일 수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더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시대를 초월하려는 목표를 갖는 것은 스스로 최고의 해답을 찾도록 채찍질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이는 유행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해요. 먼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세대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세요. 현재의 유행에 무관심하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똑같으니까요. ⏳
3. 좋은 디자인은 올바른 문제를 해결한다 (Solves the right problem)
전형적인 가스레인지는 4개의 화구가 사각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절 다이얼은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요? 가장 단순한 답은 일렬로 늘어놓는 것이지만, 이는 '잘못된 질문에 대한 단순한 답'입니다. 사용자가 매번 어떤 다이얼이 어떤 화구인지 고민해야 하니까요. 화구처럼 사각형으로 배치하는 것이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디자인입니다.
4. 좋은 디자인은 암시적이다 (Suggestive)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시각적 묘사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이야기를 너무나 훌륭하게 풀어나가서 독자 스스로 장면을 상상하게 만들죠. 모나리자를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소프트웨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레고 블록처럼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기본 요소들을 제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5. 좋은 디자인은 종종 약간의 유머가 있다 (Slightly funny)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디자인에는 묘한 유머가 있습니다. 뒤러의 판화나 사리넨의 자궁 의자(womb chair), 판테온, 오리지널 포르쉐 911 모두 어딘가 살짝 재미있는 구석이 있죠. 유머는 곧 '강인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대가들은 무언가에 압도당하지 않고, 오히려 전체 과정을 살짝 조롱하는 듯한 여유를 보입니다.
6. 좋은 디자인은 어렵다 (Hard)
위대한 작업을 해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땀 흘리고 있지 않다면 아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 험난한 지형이나 턱없이 부족한 예산 같은 어려운 제약 조건들은 디자이너로 하여금 군더더기를 버리고 우아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도록 강제합니다. 마치 야생 동물들이 혹독한 삶을 견뎌내느라 아름다운 체형을 갖게 된 것과 같습니다.
7. 좋은 디자인은 쉬워 보인다 (Looks easy)
위대한 운동선수나 디자이너들은 모든 것을 아주 쉬워 보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에요. 훌륭한 글에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일상적인 어조는 사실 8번이나 고쳐 쓴 결과물입니다. 연습을 거듭하면 의식적인 생각이 필요했던 작업들이 무의식의 영역(마치 척수 반사처럼)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의식은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죠.
8. 좋은 디자인은 대칭을 활용한다 (Symmetry)
자연은 대칭을 무척이나 즐겨 사용합니다. 대칭에는 '반복(repetition)'과 '재귀(recursion)'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특히 하위 요소에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재귀적 구조(나뭇잎의 인맥 같은)는 수학이나 엔지니어링에서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에펠탑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 중 하나도 탑 위에 탑이 있는 재귀적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9. 좋은 디자인은 자연을 닮았다 (Resembles nature)
자연을 닮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하다기보다는, 자연이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고민해왔기 때문입니다. 초기 배들의 뼈대가 동물의 갈비뼈를 닮은 것도 같은 이치죠. 내 결과물이 자연의 해결책과 닮아있다면 좋은 징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0. 좋은 디자인은 재설계다 (Redesign)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초기 작업물 중 일부를 버릴 각오를 하고, 계획이 변경될 것을 미리 계획합니다. 작업물을 과감히 버리려면 "내 안에는 이런 아이디어가 얼마든지 더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실수를 재앙으로 여기지 말고, 인정하고 고치기 쉬운 환경을 만드세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스케치'를 발명한 것도 바로 수많은 탐색과 실수를 견뎌내기 위해서였습니다.
11. 좋은 디자인은 모방할 수 있다 (Can copy)
취향이 발전하는 과정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1) 자기도 모르게 남을 모방하는 초보자 단계, 2) 의식적으로 독창적이려 애쓰는 단계, 3) 마지막으로 독창적인 것보다 '올바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깨닫는 대가의 단계입니다. 가장 위대한 대가들은 일종의 무아지경에 도달합니다. 그저 올바른 답을 얻고 싶을 뿐이며, 그 답의 일부를 다른 사람이 이미 발견했다면 그것을 가져다 쓰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남의 것을 빌려온다고 해서 자신의 비전이 사라질 거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죠.
12. 좋은 디자인은 종종 기묘하다 (Strange)
오일러의 공식, 피터르 브뤼헬의 눈 속의 사냥꾼, SR-71 정찰기 같은 최고의 작품들은 그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묘하게 기이한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묘함'을 억지로 꾸며낼 수는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기묘하게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진실을 찾으려 했을 뿐이고, 그 진실이 기묘했을 뿐입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독창성이 아니라, 그저 좋은 것을 만들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어 나오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진짜 가치 있는 것입니다.
13. 좋은 디자인은 덩어리 지어 일어난다 (Happens in chunks)
15세기 피렌체에는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밀라노도 피렌체만큼 큰 도시였는데, 왜 밀라노 출신의 천재는 기억나지 않을까요? 유전자만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1450년의 피렌체'라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관련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바우하우스나 스컹크 웍스처럼 훌륭한 작업은 특정한 '핫스팟'에서 집중적으로 탄생합니다.
14. 좋은 디자인은 대담하다 (Daring)
역사상 모든 시대에는 사람들이 맹신하는 말도 안 되는 믿음들이 있었고, 그것에 반기를 들면 사회적 따돌림이나 폭력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시대라고 다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오늘날의 실험적 오차가 내일의 새로운 이론이 됩니다. 위대한 것을 발견하고 싶다면, 기존의 관습적 지혜와 진리가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을 결코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각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
4. 창작자를 위한 위대한 작업의 비결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추함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대부분 기존의 어떤 것이 너무나 '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고치려는 과정에서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지오토(Giotto)는 수백 년간 모두를 만족시켰던 전통적인 비잔틴 성모 마리아 그림들이 너무 나무토막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였고, 코페르니쿠스는 동시대인들이 참고 넘기던 엉성한 천문학 시스템을 견디지 못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았죠.
"내가 저것보다 더 잘할 수 있겠는데."
위대한 작업은 보통 누군가가 이 생각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무작정 추함을 못 견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정확히 냄새를 맡으려면 그 분야에 대해 아주 깊이 이해해야 하고, 숙제를 마쳐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갈 때쯤이면,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건 너무 엉망이야!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을 텐데."
절대로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 목소리를 정성껏 키워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작업을 위한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주 까다로운 안목(taste), 그리고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