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그레이엄은 스타트업과 상담할 때 단순히 "어떻게 돈을 더 벌까?"보다 "이 회사를 무엇이 더 강력하게 만들까?"를 묻는 편이 훨씬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고객 관계, 돈의 흐름, 네트워크 효과, 장기 전략, 데이터와 고객을 선점하는 방식은 스타트업의 힘을 몇 배가 아니라 자릿수 단위로 키울 수 있다. 다만 모든 전략은 결국 고객의 삶을 실제로 더 좋게 만들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1. 수익보다 '힘'을 묻는 질문
저자는 스타트업 오피스아워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는 질문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무엇이 이 회사를 더 강력하게 만들까?"
"어떻게 돈을 더 벌 수 있을까?"도 유용한 질문이지만, 대체로 현재 사업을 조금 개선하는 답으로 이어지기 쉽다. 반면 회사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면, 기업가치가 몇 배가 아니라 수십 배·수백 배로 달라질 구조적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회사가 단순한 부품 공급자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기업의 제품 안에 들어가는 기술만 제공하는 대신, 가능하다면 고객과 직접 관계를 맺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돈이 이 회사를 거쳐 흐르게 만들 방법이 있는가? 돈이 당신을 통해 흐르는 것은 언제나 좋다."
결제나 토큰이 플랫폼을 통과하게 하면 고객 관계와 거래의 중심을 쥘 수 있다. 다만 모델 제공 회사들이 결국 플랫폼이나 고객을 흡수할 위험은 없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2. 플랫폼과 네트워크 효과 만들기
가장 강력한 형태는 다른 회사들이 자사 제품 위에서 무언가를 만들게 하는 앱스토어형 구조다. 다른 기업이 만든 가치가 쌓일수록 플랫폼 자체도 함께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객 관계와 결제 흐름까지 확보하면 더욱 강력하다.
앱스토어를 만들 수 없다면, 여러 회사 제품이 상호작용하는 표준을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새로운 분야에는 아직 표준이 없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이 표준을 원하기 때문에 초기에 제안된 방식이 제안자의 규모와 무관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저자는 특히 네트워크 효과를 거의 모든 스타트업에서 찾아보려 한다. 원래 네트워크 효과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서비스라도, 의외로 이를 도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단순한 서비스가 마켓플레이스로 변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원하면 다른 사용자와 비교해 자신의 성과를 볼 수 있게 할 수 있다. AI 제품이라면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상호작용 데이터를 모델 학습에 제공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일부 사용자는 이를 꺼리겠지만, 동의한 사람들은 더 많은 데이터로 개선된 모델을 사용하게 되고, 이는 제품의 선순환을 만든다. YC 역시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예상 밖의 분야에서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사례였다고 설명한다.
3. 아이디어를 넓혀 시장을 만들기
네트워크 효과는 종종 아이디어를 더 일반화할 때 생긴다. 예를 들어 AI 에이전트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결제하도록 돕는 스타트업이라면, 저자는 먼저 "에이전트들이 서로에게도 돈을 지불할 수 있는가?"를 묻겠다고 한다.
에이전트끼리 거래할 수 있다면 회사는 단순 결제 도구가 아니라 시장 자체가 될 수 있다. 무엇을 거래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더라도, 마켓플레이스의 가치는 매우 크므로 그 가능성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할 만하다. 필요하다면 초기 거래를 일으키기 위해 회사가 직접 매수·매도 상대가 되는 마켓 메이커 역할까지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가상적 변형이 언제나 좋은 사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래 아이디어를 다른 형태로 바꿔 보는 과정 자체가 사업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4. 고객을 삼키는 풀스택 전략
저자는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조작하는 일이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다루는 감각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강력하게 느껴지는 변화가 풀스택 전략이다.
이는 기업 X를 위한 기술을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기술을 직접 사용하여 X가 하던 일을 수행하면서 X와 경쟁하는 방식이다. 즉, 원래 고객이던 회사를 포괄해 버리고 외부 고객과 직접 만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는 고객이 가장 어렵게 하던 업무를 하나씩 대신해 주면서 서서히 고객의 역할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극단적으로 가면 스타트업이 모든 핵심 판단과 지적 노동을 하고, 기존 고객은 단순 실행 업무만 맡게 된다. 이 단계에서 진짜 고객은 원래 고객의 고객이며, 초기 고객은 사실상 전달 역할만 하는 존재가 된다.
이 전략의 핵심은 단순히 고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방식으로 최종 고객을 직접 해결하는 것이다.
5. 주변 기능에서 진짜 사업을 발견하기
스타트업 역사는 원래는 부수적이었던 기능이 주력 사업이 된 사례로 가득하다. 대표적으로 페이팔은 처음에는 휴대기기 보안 기술을 만들었고, 페이팔은 그 보안 소프트웨어를 보여 주기 위한 데모였다. 그러나 eBay 판매자들이 이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몇 달 뒤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제 사업에 실제로 들어와 있음을 인정했다.
따라서 창업자가 주력 제품 주변의 무언가를 만들면 저자는 항상 묻는다.
"이게 오히려 진짜 제품일 수 있을까?"
사용자가 제품을 창업자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쓴다면, 이를 단순한 오용으로 보고 화내서는 안 된다. 사용자는 원래 해결하려던 문제가 아니라도, 자신이 절실히 원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도구를 억지로라도 쓰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가 제품을 잘못 쓰는 데 짜증 내지 말고,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들어라. 거기에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시장이 강한 수요를 보내는 신호다. 스타트업은 제품 사용 방식에 숨어 있는 그 신호를 읽어야 한다.
6. 고객이 돈을 벌게 하고 장기전을 택하기
페이팔이 빠르게 성장한 중요한 이유는 사용자들이 돈을 벌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고객의 수익 창출을 돕는 제품은 도입도 빠르고, 고객이 지불할 의사도 크다. 따라서 사용자 증가와 매출 증가가 동시에 가속된다. 저자는 YC가 투자한 가장 성공적인 회사들 중 다수가 사용자 수익에 기여했으며, YC 자체도 그러한 사례라고 말한다.
또한 장기전을 하는 태도 역시 스타트업의 힘이 된다. 경쟁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인수되기를 기대하며 움직이고, 대기업의 임원들은 몇 년 뒤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분기 실적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10년 뒤에 큰 보상을 주는 선택은 대체로 과소평가되어 있다.
고객을 얻기 위해 초기에는 매우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낮은 가격에 팔아서라도 사용자를 확보하라는 조언이 여기서 나온다. 처음에는 마진보다 시장 장악과 성장률이 중요할 수 있다. 다만 제품 가치가 10달러인데 5달러에 팔아 성장하는 경우처럼, 지나친 할인은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가치와 수요 신호를 흐릴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7. 더 많이 주고, 더 크게 성장하기
저자는 팀 오라일리의 말을 인용해, 기업은 자신이 포착하는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착하는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라."
이는 이상주의적 조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오히려 더 큰 부를 만드는 현실적인 길이다. 기존 고객에게서 마지막 한 푼까지 짜내는 일은 많아야 수익을 두 배 정도 늘릴 수 있다. 반면 고객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면 10배나 100배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원리는 오픈소스에서 잘 드러난다. 기업은 제품을 무료로 배포하지만, 그 대가로 해당 제품을 표준으로 만들고 사용자 신뢰를 얻는다. 제품이 널리 퍼지면 회사는 훨씬 커진 시장에서 작은 몫을 가져가더라도 더 큰 가치를 얻게 된다.
완전한 오픈소스가 부담스럽다면 제품을 확장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앱스토어는 확장성의 한쪽 끝에 있는 사례다. 확장 기능을 엄격히 통제하거나 과금하지 않을수록, 장기적으로 더 큰 생태계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제품을 API로 호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확장성의 궁극적 형태다. 많은 회사는 통제력을 잃는 것을 싫어해 API 제공을 꺼리지만, 저자는 대개 그것이 실수일 수 있다고 본다. 인간 사용자가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제품을 쓰게 되는 시대에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품을 조합하고 사용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잃을 것이 적으므로, 기본적으로는 API를 제공하는 쪽을 택하라고 권한다.
8. 고객과 데이터를 가장 이른 시점에 잡기
의외로 스타트업에게는 더 초기 단계의 회사에 판매하는 전략이 강력하다. 초기 스타트업은 돈이 적지만, 사용량에 따라 과금한다면 고객이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매출도 스타트업 수준의 성장률로 커질 수 있다.
스트라이프는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회사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결제 인프라는 잘 작동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 영역이고, 스트라이프를 설치한 회사는 대체로 이탈하지 않는다.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제품 이해도가 높고 의사결정도 빠르다. 제품이 가장 좋으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고객이 직원 500명 이상이 되어야만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긴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엔터프라이즈 영업에 갇히기 쉽다. 이 시장에서는 최고의 제품이 반드시 이기지 않는다.
저자는 "어느 규모의 회사를 목표 고객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의 생애 중 어느 시점에 그들을 확보할 것인가?"
고객이 나중에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왜 큰 회사가 된 뒤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빠르게 성장하고 빨리 결정하는 초기 고객을 확보한 뒤,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편이 더 강력하다. 이를 위해 이상적인 제품은 동기 창업자들이 지금 당장 설치해 쓸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리플링은 직원 데이터가 처음 생겨나는 지점인 온보딩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직원 데이터용 운영체제와 그 위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단순 온보딩 시장을 노린 것보다 훨씬 뛰어난 온보딩 제품을 만들었다. 그 결과 제품은 빠르게 퍼졌고, 회사는 데이터 흐름의 상류를 선점했다.
"돈, 사용자 관계, 고객의 성장 단계, 데이터 중 무엇이든 상류에 있는 것은 거의 언제나 좋다."
9. 느린 시장과 강한 기존 세력을 우회하기
스타트업은 대체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시장에서 가장 강하다. 반대로 음반사나 PBM처럼 저자가 '마피아'에 비유하는 강력한 기존 세력이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약하다. 이곳에서는 좋은 제품만으로 이기기 어렵고, 기존 세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세력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면승부가 아니라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기존 강자를 직접 물리치려 하기보다 그들을 점점 중요하지 않게 만드는 다른 차원의 승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기존 세력을 이기는 일은 성공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성공에 따라오는 부수적 결과가 된다.
병원이나 교육구처럼 의사결정이 느린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진흙탕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시장에서는 가능하다면 더 빨리 결정하는 고객층부터 공략해야 한다. 예컨대 학교 시스템 자체에 팔기보다 학생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회 경로를 찾을 수 있다.
10. 다른 회사와 자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회사를 강력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일은 종종 다른 회사에 의해 받는 제약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부품 공급자라면 고객 관계를 직접 소유함으로써 다른 회사가 만든 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큰 관료 조직에 팔아야 한다면, 그 회사가 더 작고 빠르게 결정하던 시기에 고객으로 잡거나, 아예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스택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
이를 사업 확장 아이디어를 찾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현재의 아이디어는 다른 회사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제약받고 있는가?"
하지만 스타트업을 막는 가장 큰 요소가 외부 회사가 아니라 스타트업 자신인 경우도 많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조언 중 놀랄 만큼 많은 문장에 "그냥"이라는 말이 들어간다고 한다.
"X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Y를 해라."
초기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복잡하게 꼬이는 이유는, 과거의 다른 아이디어에서 진화하면서 이제는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특히 아주 초기에는 두려움 때문에 회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덜 야심 찬 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그냥 Y를 하라"는 말은 사실상 다음 뜻이다.
"그냥 똑바로 서라."
회사가 두려움을 버리고 더 직접적이고 야심 찬 목표를 택하면, 전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될 수 있다. 🌱
11. 고객을 더 좋게 만드는 힘의 조건
앞서 제시된 모든 전략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공통 조건이 있다. 네트워크 효과를 도입하거나, 결제 흐름을 장악하거나, 풀스택으로 전환하는 일은 회사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결과가 고객에게 더 나아야만 고객이 받아들인다.
"이 모든 전략은 고객에게 상황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처음에는 힘이 거의 없다.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새 스타트업은 대체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준다. 고객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고, 고객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으로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원칙을 거꾸로 적용해 사업 아이디어를 찾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먼저 고객의 관점에서 완벽한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다. 그리고 그 세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 가운데, 스타트업이 스스로 변화하여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회사가 되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12. 마무리
스타트업의 힘은 단기 매출을 조금 늘리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고객 관계와 거래 흐름을 소유하고, 생태계와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며, 고객·데이터·시장 진입 시점의 상류를 선점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강력해지기 위한 모든 구조적 변화는 고객에게 실제로 더 큰 가치를 주어야 한다. 스타트업이 처음의 약함을 넘어 오래가는 힘을 얻는 길은, 결국 고객을 더 잘 돕는 길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