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벤처스에서 EIR로 패밀리사들을 도울 때 잘나가는 스타트업은 별로 도울 일이 없었다. 잘나가고 있을 때는 기세가 살도록 맞장구 쳐주고 응원을 하는게 좋다. 그럴 때는 누가 옆에서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도와달라는거 도와주면 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어려움을 겪고 런웨이가 얼마 남지 않으면 도움의 형식이 바뀐다. 상황 인식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할 때도 있고 전략에 대해 재검토 하기도 하며 원치 않은 이별을 위로하기도 한다. 망할거 같은 스타트업을 등에 얹고 수 개월에서 수 년을 지내온 대표님과 팀을 보자면 내 과거의 어려운 순간들도 주마등 처럼 스쳐가며 아찔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 YCombinator 유튜브 중 추천하는 영상이 있다. Daniel Gross의 How to Win (Startups) 인데 일반적인 스타트업 영상들과는 다르다. 스타트업 관련 영상들의 대다수가 어떻게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모으고 투자를 받고 수익을 내는지를 논하는데 반해, 이 영상은 이런 주장을 한다.
창업가는 운동선수와 같다. 스타트업은 마치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수면은 최고의 두뇌 기능 향상제다. 8시간 밖에 안걸린다.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으면 판단력도 무너진다. 운동선수처럼 관리하라.
창업가는 운동선수라는 것에 나는 매우 동의한다. 스타트업은 돈이 떨어졌을 때 망하는게 아니라 창업자가 포기했을 때 망한다. 투자계획서 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각종 어려움과 난관을 뚫고 운을 만나 상승할 때 까지 버티며 기회를 노리는 게임이다. 그러기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치지 않고 높은 정신과 높은 체력으로 좋은 의사결정들을 실행하고 쌓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몸과 마음에 데미지를 입힌다. 괄목할 성과 없이 죽어라 일만 하면 몸과 마음이 축난다. 경험상 2년 정도가 한계다. 2년 안에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성과가 있어야 견딘다. 하지만 이것도 시리즈B~C 정도에는 번아웃에 시달리는 공동창업자들이 부지기수로 나온다.
회복하며 일해야 한다. 회복이 별게 아니다. 열심히 일하라. 죽어라 일하라. 다만, 질 좋은 수면 8시간을 확보하고, 정크푸드 대신 클린한 음식 먹고, 술 마시지 말고 그 시간에 운동하라. 이 세 가지만 일 보다 우선순위로 타협 없이 지키면 된다. 그러면 창업이라는 격무를 더 오랜 기간 견디고 운을 만날 확률을 높인다.
제프 베조스는 2010년대 인터뷰들에서 “대부분 회사는 1~3년 내 성공하길 원한다. 하지만 7년을 하겠다고 바라보면 경쟁 우위가 크게 오른다. 아마존은 보통 5~7년을 본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IR 때 Product-Market Fit도 따지지만 Founder-Market Fit을 중요시 한다. 창업가가 사업에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될 때 까지 끌고 나가려면 그 사업이 지금 좋은 아이템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그 창업가가 쌓아온 인생의 연속선 상에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자리잡고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래 오래 걸리는 게임이라는걸 잘 알기도 하고 창업가가 포기하는 순간 투자금도 사라지는거니까.
길게 보자. 하루하루를 전쟁 같이 보내면서도 잘자고 잘먹으며 잘 회복하자. 이러지 못해 일만 하다가 지친 창업가들을 너무 많이 봤다. 일단 번아웃이 오면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데 신경을 못쓰고 포기할까 말까를 고민한다. 일을 더 많이 잘 하기 위해서 잘자고 잘먹고 운동하자는거다.
요즘은 애플워치나 오우라링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을 사용하는 것도 수면의 질과 양 확보에 도움이 많이 된다. 회복에 대한 지표 중 하나로 수면 중 또는 기상시 분당 최저 심박수를 사용할 수 있다. 일과 중에서는 HRV(Heart Rate Variability, 심박변이도)를 통해 교감신경 활성화에 따른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가늠할 수 있다. HRV가 좋으면 불안, 우울 같은 정신적 건강은 물론 압박 상황에서의 의사결정과 문제해결 능력 개선이 있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회사에서 핵심지표를 정하고 대시보드를 보며 데이터 인폼드 의사결정을 하는게 잘 맞았던 분들은 이를 개인의 삶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996를 지속하는 방법은 하루 24시간에서 수면, 영양, 운동시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고 그러고도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가능할거다. 그럼에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창업을 선택한 모든 창업가들을 응원한다.
p.s. 이 글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