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인 세상의 특정 부분을 로직, 인과, 패턴으로 단순화 한 것이 모형이다. 모형은 그래서 세상의 동작을 모방하며 이는 디지털 트윈이다. 여기서 인자를 바꾸며 여러번 시간축을 돌려보는 것이 시뮬레이션이며 그 결과를 현실에 대입해보는 것이 예측이고 의사결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모델'을 사용한다는 것은 세상을 작게 시뮬레이션하는 것과 동치이다.
난 요즘 일상의 모든 것을 이 프레임에 넣어 돌려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품어온 질문이 하나 있었다. "전문 바리스타는 매장에서 커피를 내리면 10에 8~9잔은 맛있는데, 내가 집에서 내리면 왜 10에 2~3잔만 맛있는가. 원두, 분쇄, 물, 온도, 추출 등 모든 변인을 제어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남긴 녹취를 LLM에 모두 넣어 분석했다. 내가 원하는 커피 맛에 영향을 끼치는 인과쌍을 추출하고, 이를 커피 맛에 영향 끼치는 인풋들과 그 작용들과 맛이라는 아웃풋의 인과 그래프로 구성했다. 그동안 내가 충분히 잘 제어하고 있었던 변수들이 대다수였지만 LLM이 제안한 하나가 정전기 제어였다. RDT 기법이라고 원두에 물 한 방울 정도를 분무해 그라인딩하면 제어가 된다고. 정전기가 있으면 가루가 날리거나 뭉침이 생긴단다.
이후 나는 10잔 내리면 8~9잔 맛있게 나오는 (내가 의도한 스윗스팟에 들어오는) 홈바리스타가 되었다. 집에서는 하루에 몇 잔만 내리다 보니 매장에서처럼 계속 그라인딩하는 환경보다 정전기 관리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알면 별거 아닌 것들이나 나름 몇 년의 숙원을 이렇게 LLM의 도움을 받아 풀어나가는 일상의 개선들. 귀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