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커지면 상하 위계 간은 물론이고 각 조직 간의 크고 작은 이해관계와 알력다툼이 만연하며 성장 속도가 늦어지는데, 어째서 쿠팡은 이렇게 되지 않았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문득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바로 쿠팡의 통역사분들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감히 생각한다.
쿠팡은 한국 본사의 임원진부터 글로벌 오피스의 실무자까지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일한다. 업무 시 공용어는 한국어보다는 영어다. 모든 주요 문서는 영어로 작성되고 모든 주요 미팅에는 전담 통역사가 함께 들어와 실시간 통역을 지원한다.
그런데 이분들의 실시간 통역이란 것이 단순히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바꿔 말하는 게 다가 아니더라. 쿠팡의 통역사분들은 수많은 미팅에 들어가고 문서를 검토하며 회사 전반과 각 조직의 가장 많은 정보와 컨텍스트를 갖고 있어 이것이 마법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 누군가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을 해도 -> 통역이 오해 없도록 명확한 용어로 바뀐다.
-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해도 -> 통역 시 가볍게 다시 물어 정정할 수 있도록 한다.
- 누군가 조직 이기주의 등 편협한 소리를 해도 -> 통역이 톤앤매너를 조절해 건설적으로 이것이 논의될 수 있는 기회로 바꾼다.
- 미팅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빙빙 돌고 있어도 -> 통역이 간파하고 원래의 주제에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넛지를 한다.
- 누군가 너무 감정적이거나 화를 내도 -> 통역이 그 감정이 잠시 담길 작은 버퍼가 되어준다.
등등등. 정말 수많은 부분에서 통역사분들의 역량이 발휘된다. 굉장한 건 이것들이 미팅 안에서 절대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역사가 주인공이 되는 일은 없다. 다만 그 미팅은 여러 함정을 무사히 넘기고 좋은 의사 결정을 이룬다. 누군가 정말 잘하는 것들은 그대로 스며들어 당연한 것이 되지 잘한 티가 나지 않더라.
나는 요즘 이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AI가 인간 개발자보다 코딩을 더 잘하는데 개발자가 설 자리는 점점 작아지지 않겠는가 하고. 그런데 쿠팡에서 본 통역사분들을 떠올리며 반성했다. 통역사의 일이 단순히 통역이 아니고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듯이 개발자의 일도 단순히 개발이 아니고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개발자만 그렇겠는가? 모든 프로페셔널들이 다 이럴 것이다.
2024년 5월 쿠팡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미 통번역을 좁은 범위로 보면 AI가 더 잘한다. 그러나 쿠팡은 일을 되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거다. 이 관점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진짜 적다. 좋은 통역사 한 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열정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옆에서 본 나도 조금 안다. 누구는 새로운 시대에 통번역사 무용론을 외칠 때, 누군가는 그 핵심을 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