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L. 애코프는 시스템 사고를 통해 조직과 교육을 부분들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전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날 교육이 정보 전달과 정답 암기에 치우쳐 학생의 동기와 창의성을 꺾고 있다고 비판하며, 교육의 목적은 '무엇을 가르칠지'가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법을 배우고 배우고 싶어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학과와 부서를 먼저 만들고 이를 조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체를 먼저 설계한 뒤 부분을 그 전체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1. 시스템은 부품의 합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전체
강연은 학생이 애코프의 새 책을 읽고 "교수님도 모르시는 내용이 책에 아주 많네요"라고 말한 일화로 시작한다. 애코프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논의가 두 가지 토대 위에 서 있다고 밝힌다. 첫 번째 토대는 시스템과 시스템 사고이며, 두 번째는 인간 정신의 내용인 데이터·정보·지식·이해·지혜를 구분하지 못하는 교육의 문제다.
애코프에 따르면 시스템은 두 개 이상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이 전체의 성질이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각 부분은 따로 떨어져 전체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이라는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심장이 미치는 영향은 폐, 뇌, 다른 기관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시스템의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묶거나 나누어도 부분들은 전체에 영향을 주지만 독립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이란 독립적인 부분들로 나눌 수 없는 전체입니다."
이 정의에서 매우 중요한 결과가 나온다. 시스템의 본질적 성질은 각 부분이 따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부분들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느냐에서 나온다. 자동차의 본질적 능력은 사람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지만, 엔진·좌석·차체 중 어느 하나도 혼자서는 사람을 운반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은 어떤 장기 하나가 지닌 성질이 아니라 몸 전체가 지닌 성질이다.
"자동차는 부품들의 합이 아니라, 부품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자동차를 완전히 분해해 모든 부품을 방 안에 보관한다고 해도, 그곳에는 자동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품 모음만 있을 뿐이다. 전체가 해체되면 전체의 본질적 성질도 사라지고, 그 시스템 안에서 각 부분이 지녔던 기능적 의미도 달라진다.
2. 부서별 최적화가 전체를 망칠 수 있는 이유
애코프는 서구의 경영 방식이 '분할해서 정복하라'는 원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한다. 기업은 생산·마케팅·재무·인사 부문으로 나누고, 대학은 학과·교육과정·프로그램으로 쪼갠 뒤, 각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전체도 좋아질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 가정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단언한다.
"시스템에서 부분 각각의 성과를 개선한다고 해서 전체의 성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주 더 나빠집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재미있는 자동차 비유를 든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수백 종의 자동차를 전부 모아 놓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엔지니어들에게 각각 최고의 엔진, 최고의 변속기, 최고의 연료분사 장치 등을 고르게 한다고 하자. 롤스로이스 엔진, 메르세데스 변속기, 폭스바겐 연료분사 장치처럼 모든 부품 중 '최고'만 골라 조립하면 최고의 자동차가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동차조차 만들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부품들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부품의 개별 품질이 아니라 부품들이 맞물리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대학, 기업, 병원은 각 부서의 성과를 따로 높이면 전체가 개선될 것처럼 운영된다. 애코프는 이 관점이야말로 교육과 조직을 논의할 때 반드시 버려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3. 데이터에서 지혜로: 효율성과 효과성의 차이
두 번째 토대는 인간 정신의 내용을 다섯 단계로 구분하는 것이다. 애코프는 다음과 같은 위계를 제시한다.
- 데이터: 사물이나 사건의 속성을 나타내는 기호
- 정보: 유용하도록 처리된 데이터
- 지식: '어떻게 하는가'에 답하는 내용, 즉 방법과 기술
- 이해: '왜 그런가'에 답하는 설명
- 지혜: 목적 자체를 평가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
그는 이를 오래된 격언으로 표현한다.
"정보 1온스는 데이터 1파운드의 가치가 있고, 지식 1온스는 정보 1파운드의 가치가 있으며, 이해 1온스는 지식 1파운드의 가치가 있고, 지혜 1온스는 이해 1파운드의 가치가 있습니다."
가령 주소, 나이, 자녀 수처럼 사실을 나타내는 것은 데이터다. "행사가 어디에서 열리나요?"라는 질문에 "강당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은 정보다. "강당에 어떻게 가나요?"라는 질문에 길을 알려주는 것은 지식이며, 그 결과로 실제 이동 능력, 즉 기술이 생긴다. "왜 행사에 가려 하나요?"에 답하는 것은 이해다.
하지만 지혜는 앞의 네 가지와 질적으로 다르다. 데이터·정보·지식·이해는 대체로 이미 정한 목적을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게 해 준다. 반면 지혜는 애초에 그 목적이 옳은지 묻는다. 여기서 애코프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한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과, 옳은 일을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즉 효율성은 일을 '올바르게, 잘' 수행하는 능력이고, 효과성은 '올바른 일'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애코프는 사회가 잘못된 일을 아주 효율적으로 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
"잘못된 일을 더 잘할수록, 우리는 더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갑니다."
그는 의료 체계를 예로 든다. 사람들이 이를 '건강관리 체계'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의료 제공자가 돈을 버는 방식은 사람들이 아프거나 장애를 겪을 때 치료하는 데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보면 이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체계라기보다 질병과 장애를 돌보는 체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을 때 당신을 돌봐 주는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그것은 건강관리 체계가 아니라 질병과 장애 관리 체계입니다."
그는 기업도 실제로는 이윤 극대화보다 고위 경영진의 편안함을, 대학도 학생 교육보다 교수진이 원하는 일하는 삶의 질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 특히 대학에서 강의는 교수에게 '최소화하고 싶은 비용'처럼 취급된다는 날카로운 풍자가 이어진다.
4. 가르침보다 배움이 많은 학교
애코프는 좋은 학교일수록 교수의 강의 시간이 적다는 역설적인 관찰을 제시한다. 미국 대학을 최고 수준부터 낮은 수준까지 늘어놓고 교수진의 연간 강의 시간을 비교해 보면, 명문대일수록 강의 시간이 적고 다른 대학일수록 강의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학교는 가르침은 없지만 배움은 아주 많은 학교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교사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애코프는 흔히 말하는 방식의 일방적 교수 행위가 학습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 언어를 배울 때, 걷는 법을 익힐 때,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대개 누군가의 정규 수업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다. 특히 외국어는 교실에서 배우는 것보다 해당 언어가 쓰이는 나라에 가서 살아 보며 배우는 편이 훨씬 깊게 익혀진다.
"가르침은 배움의 큰 장애물입니다."
다만 역설적으로, 애코프는 가르치는 행위 자체는 훌륭한 학습 방법이라고 말한다. 수업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학생이 아니라 교사일 때가 많다. 자신도 학생 시절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용을 계속 공부해 왔다며, 교육자는 '전문 교사'라기보다 '전문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그는 대학의 역할이 두 가지여야 한다고 정리한다.
- 학생이 배우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 학생이 배우고 싶어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
대학에서 배운 것 중 상당수는 훗날 직업과 무관하거나 빠르게 낡아 버린다. 따라서 졸업 뒤의 성공은 학교가 준 지식의 양보다, 일과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을 계속 배울 수 있는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여러분의 미래는 배우는 능력과 배우려는 동기에 달려 있습니다."
5. 동기와 창의성을 되살리는 교육
애코프는 학교가 학습 동기를 키우기는커녕 일부러 꺾는 듯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수업과 과제를 '해야만 하는 고역'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배우고 싶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한 흑인 저소득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일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약 80%가 기능적으로 문맹 상태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처음에는 문해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지만, 조사 끝에 아이들이 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지역 가정의 약 65%에는 책이 한 권도 없었고, 아이들은 어른이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문화는 문자 중심이 아니라 말과 구술 중심의 문화였다. 게다가 소년들이 갱단에 속해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에서 책은 지배적인 백인 문화에 굴복하는 상징처럼 여겨졌고, 책을 들고 다니면 같은 갱단 구성원에게도 공격당할 수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 강당에서 하루 종일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틀고, 어떤 학생이든 수업 허락 없이 와서 보게 했다. 아이들은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어 자막을 읽기 시작했고, 그 학기가 끝날 무렵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은 자막을 읽고 싶어 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웠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동기가 생긴 것입니다."
애코프에게 교육의 핵심 질문은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흥분시키고 행동하게 하는가?"다. 그는 역사 속 주요 혁명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동원하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학교와 대학은 변화를 만들어 내기보다 대체로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험이 창의성을 죽이는 방식
에드워드 드 보노의 연구를 언급하며, 애코프는 어린아이들이 원래 매우 창의적이지만 성장하면서 그 능력을 잃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학교 시험이다. 시험 문제를 받으면 학생은 문제 자체를 탐구하기보다 다음 질문부터 한다.
"선생님이 기대하는 답은 무엇일까?"
기대되는 답은 이미 알려진 답이므로 창의적일 수 없다. 창의성은 예상 밖의 답, 기존 기대에서 벗어나는 놀라움에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이란 놀라움이며,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는 학생들이 일부일처제, 혼전 성관계, 경제 체제, 민주주의 등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자유롭게 물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법, 예상 밖의 답을 내지 않는 법을 배우고, 결국 사회와 교수진의 기대에 순응하게 된다.
한 학생이 과제 형식 지시를 교묘하게 비틀어, 읽기 어렵지만 형식상으로는 지시를 따르는 독특한 보고서를 제출한 일화도 나온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애코프는 학생이 자신을 놀라게 하려고 공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나를 속이거나 놀라게 하려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 시간을 썼습니다. 그는 창의적이었습니다."
다만 애코프는 다음번에도 똑같이 하면 더는 창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다음번에는 창의적이지 않을 테니까요."
6. 학생이 가르치고 교사는 학습을 돕는 대학
애코프는 교수회의에서조차 '학생'이라는 단어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가 공과대학 교수회의에 2년간 참석하며 논의 내용을 기록했을 때, 학생이라는 말은 단 한 번만 나왔다고 한다. 회의는 학생의 배움보다 교수의 복지, 일정, 학문적 자유처럼 교수진의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교수회의는 교수에 관한 회의입니다. 학생에 관한 회의가 아닙니다."
교수진은 학생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자신들이 안다고 믿지만, 애코프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학 졸업생 상당수가 5년 이내에 공학 일을 하지 않으며, 통계학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들조차 통계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사례를 든다. 중요한 변화는 기존 전문가보다 바깥에서 분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분야의 변화는 전문가들이 아니라, 그 분야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만들어 냅니다."
그는 컴퓨터 보조 수업을 "인간 지성에 대한 궁극의 모욕"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컴퓨터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컴퓨터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컴퓨터에 산수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겼더니, 한 학기 만에 초등 산수의 두 학년 분량을 배웠다는 실험을 소개한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필요할 때 활용하는 자원이었다.
또한 실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학생 팀에게 맡긴 사례도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물 공급, 고속도로 응급 서비스 같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다 미적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교수는 직접 가르쳐 주지 않고 책을 알려 주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가르쳐 달라고요? 아니요. 여러분이 배워야 합니다."
학생들은 스스로 미적분을 공부했고, 여름 프로그램 종료 뒤 참여 학생의 95%가 대학 초반 2년간의 수학 과정을 시험으로 통과했다. 필요성과 목적이 분명해지면 학습 속도가 놀랄 만큼 빨라진다는 것이다.
애코프는 개발도상국 발전계획 과목을 원한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당신들이 이 수업을 가르치고, 교수들이 학생으로 참석하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교수들의 지식을 파악해야 한다며 어려워했지만, 결국 13명의 학생이 수업을 운영했고, 애코프는 그것이 자신이 들은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경험에 참여한 이들은 이후 페루, 브라질, 세계은행 등에서 주요 계획 업무를 맡게 됐다.
"우리는 대학을 거꾸로 세워 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7. 학문 분과가 현실을 쪼개는 방식
애코프는 대학이 현실을 물리학·화학·심리학·경제학·사회학 등 분과로 나누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현실에는 물리적 문제, 경제적 문제, 사회적 문제처럼 분리된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물리적 문제, 화학적 문제, 사회적 문제, 경제적 문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문 분과는 현실의 구조가 아니라 지식을 정리하고 찾아보기 위한 파일링 시스템에 가깝다. 서류철에 'A' 파일과 'B' 파일을 나누는 것이 그 안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은 아니듯, 학문의 분류도 접근 편의를 위한 분류일 뿐이다. 라이프니츠가 아마도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인간"이었다는 문장을 소개하며, 지식이 팽창하면서 인간이 다룰 수 없게 되자 분과가 점점 더 세분화됐다고 설명한다.
"학문 분과는 자연의 실체가 아닙니다. 지식을 보관하기 위한 파일 체계입니다."
그는 한 노년 여성의 죽음을 여러 전문가가 다르게 해석한 사례를 든다. 심장병이 있던 여성이 병원 검진 뒤 집으로 올라가다 계단에서 심장마비로 숨졌을 때, 지역의학 교수는 의사가 부족해 왕진을 못 한 의료 문제라고 봤다. 경제학 교수는 복지와 의료 혜택이 부족해 개인 의사를 부를 돈이 없었던 경제 문제라고 봤다. 건축학 교수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던 건축 문제라고 봤다. 사회복지 교수는 그녀가 성공한 아들과 소원해져 도움을 받지 못했던 가족·사회 관계의 문제라고 봤다.
"그것은 의료 문제입니까, 경제 문제입니까, 건축 문제입니까, 사회복지 문제입니까? 어느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각 형용사는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사람의 관점을 설명할 뿐이다. 기업에서 매출이 줄면 마케팅 책임자가 이를 '마케팅 문제'라고 부르고 마케팅 변수만 조정하려 하지만, 진짜 해결은 생산·서비스·제품 설계·조직 운영 등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엘리베이터와 거울의 해법
뉴욕의 한 오래된 사무실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이 길다는 불만이 쌓였다. 엔지니어들은 엘리베이터를 추가 설치하거나 자동화하거나 컴퓨터 제어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비용이 너무 크거나 효과가 충분하지 않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브레인스토밍 자리에서 젊은 인사 담당자가 다른 관점을 냈다.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느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2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해 지루해하는 것이라는 관점이었다.
"사람들은 2분 동안 서서 지루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해법은 단돈 500달러로 로비에 거울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며 기다리는 시간을 덜 지루하게 느꼈고, 불만은 사라졌다.
"아무도 문제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보편적입니다."
애코프가 말하는 학제 간 접근은 여러 학과를 기계적으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싼 여러 관점을 탐색해 가장 좋은 해결 방향을 찾는 일이다.
8. 문제를 푸는 것을 넘어 문제를 없애는 설계
애코프는 교육이 '문제 해결'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진짜 문제가 아니라 연습문제와 질문을 준다고 지적한다. 문제·연습문제·질문은 서로 다르다.
연습문제는 출제자가 문제를 구성하는 데 사용했던 중요한 정보를 일부러 제거하고, 학생이 제한된 조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도록 만든 것이다. 따라서 실제 문제를 다루는 훈련과는 다르다. 그는 통계학자 메릴 플러드가 낸 공의 색깔 확률 문제를 예로 든다. 공이 흰색과 검은색뿐이라는 전제가 주어지면, 학생은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애코프는 먼저 "공이 흰색과 검은색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그 전제를 알려 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연습문제가 됩니다."
그는 한 손을 묶고 권투를 배우는 것이 두 손으로 권투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듯, 연습문제만 푸는 교육은 현실의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맥락 없이 "2 더하기 3은 얼마인가?"라고 묻는 것조차 문제가 있다. 온도 단위인지, 로그인지, 몇 진법인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는 언제나 맥락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이 절대적 맥락과 절대적 답을 가진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는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네 가지로 나눈다.
- 방치(Absolution): 문제를 무시하고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방식
- 문제 완화·해결(Resolution): 과거 경험을 참고해 '충분히 괜찮은' 답을 찾는 방식
- 문제 해결(Solution): 현재 조건에서 가장 최적인 답을 찾는 방식
- 문제 해소(Dissolution): 문제를 낳는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해 문제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
애코프는 세 번째인 '문제 해결'보다 네 번째인 문제 해소가 더 뛰어난 접근이라고 말한다. 어떤 해결책도 영구적이지 않고, 하나의 해결은 대개 새로운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문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성냥갑 사례가 이를 보여 준다. 과거 종이 성냥갑은 덮개를 열어 둔 채 성냥을 긋다가 불꽃이 다른 성냥에 옮겨붙어 손을 데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회사는 "성냥을 긋기 전에 덮개를 닫으세요"라고 인쇄했지만 사고도 소송도 줄지 않았다. 한 젊은이는 성냥갑의 마찰면을 덮개 앞면이 아니라 뒷면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덮개를 닫아야만 성냥을 그을 수 있고, 손을 데는 문제가 구조적으로 사라진다.
"그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해소했습니다. 성냥갑을 다시 설계해서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했습니다."
9. 전체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애코프는 설계를 잘 이해하는 직업으로 건축가를 든다. 가족이 건축가에게 방 세 개, 거실, 부엌, 가족실, 차고 등을 원한다고 말할 때, 좋은 건축가는 방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설계해 놓고 나중에 조립하지 않는다. 먼저 집 전체의 형태와 구조를 구상하고, 그 안에 방들을 배치한다. 방의 크기나 모양을 바꿔야 할 때도, 그 변화가 집 전체를 더 좋게 만들 때만 바꾼다.
"부분은 전체를 더 좋게 만들 때에만 수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시스템 사고의 핵심이다. 대학의 한 학과나 부서가 자체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이유만으로 개선해서는 안 된다. 그 변화가 대학 전체의 학습과 목적을 더 좋게 만든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대학은 학과가 전체에 기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학과 자체의 독립적인 성과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여기서 더욱 근본적인 주장을 펼친다. 사실 '문제'란 현실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 우리가 떼어 낸 추상물이다. 현실은 서로 얽힌 문제들의 덩어리, 즉 하나의 시스템이다. 현실을 작은 문제들로 쪼개면 전체의 본질적 성질과 각 부분이 상호작용 속에서 지니던 의미를 잃게 된다.
"현실은 문제들의 시스템입니다. 문제는 분석을 통해 현실에서 추출한 추상물일 뿐입니다."
애코프는 이를 '험프티 덤프티의 오류'에 비유한다. 달걀이 깨진 뒤에는 왕의 말과 왕의 신하를 모두 모아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교육도 이미 학문 분과라는 조각들로 너무 잘게 깨졌기 때문에, 나중에 '학제 간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조각을 다시 붙인다고 해서 진짜 전체성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부분을 먼저 만들고 전체를 그것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먼저 다루고 그 전체에 맞도록 부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오늘날 대학이 하나의 교육적 전체가 아니라 학과들의 집합체가 되어 버렸다고 본다. 따라서 교육을 진정으로 바꾸려면 기존 교육 체계에 투자해 온 사람들의 안일함을 지키려 하지 말고, 우리가 현실과 교육에 대해 얼마나 적게 알고 있는지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교육받은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적게 아는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마무리
애코프의 강연은 단순히 '융합 교육을 하자'거나 '창의성을 키우자'는 수준의 제안이 아니다. 그는 부분 최적화, 정답 중심 시험, 교수 중심 교육, 학문 분과 중심 조직이 모두 현실을 잘못 쪼개어 보는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대안은 분명하다. 교육과 조직은 전체의 목적부터 다시 묻고, 사람들에게 답을 전달하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배우며 문제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설계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