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년 사이 벤처투자의 중심은 마켓플레이스·핀테크·소프트웨어에서 자본과 시간이 많이 드는 하드 사이언스로 빠르게 이동했다. 글은 그 배경을 AI가 발견의 비용과 시간을 낮춘 점, 대담한 창업자들이 거대한 문제 해결을 '멋진 일'로 만든 점, 지정학이 기술 자립과 투자를 강제한 점에서 찾는다. 다만 이 흐름에는 거품과 자본의 낭비도 따를 수 있으므로, 낙관하되 독립적 사고와 규율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1. 소프트웨어에서 하드 사이언스로 옮겨간 관심
글쓴이가 벤처투자 경력을 막 시작했던 약 5년 전에는 받은 편지함이 마켓플레이스, 'Uber for X', 산업별 소프트웨어, 네오뱅크 사업 제안으로 가득했다. 이런 사업 모델들이 여전히 유효하기는 하지만, 전체 제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과거에는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던 분야, 즉 물리·생명·화학 등 하드 사이언스가 벤처 생태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기술 업계에서 변화는 흔히 아주 천천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폭발한다는 뜻으로 표현되는데, 하드 사이언스로의 이동도 정확히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피터 틸은 10여 년 전 기술 산업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나는 자동차를 원했는데, 140글자를 얻었다."
당시에는 이 말이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진단이 되었다. 글은 이 변화가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2. AI가 발견의 경제학을 바꾸다
글쓴이는 2022년 할아버지에게 처음 ChatGPT를 보여줬을 때 할아버지가 이를 "마법"이라고 불렀던 장면을 떠올린다. GPT가 대중에게는 갑자기 마법처럼 나타난 기술이었지만, 그 기반 기술은 수십 년간 대중의 시야 밖에서 축적되어 왔다. 기술은 인간이 가능한 일의 범위를 넓히며, 그래서 때로는 마법처럼 느껴진다. ✨

AI 혁명의 핵심 전환점
딥러닝과 신경망의 중요한 출발점은 AlexNet이 ImageNet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거둔 승리였다. AlexNet은 GPU를 활용해 오류율을 약 15%까지 낮췄는데, 당시 최고 수준은 약 26%였다. 이는 신경망의 성능 자체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기보다, 충분한 연산 능력과 데이터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그다음 결정적 도약은 구글의 논문 「Attention Is All You Need」와 함께 등장한 트랜스포머 구조였다. 기존 AI 모델은 단어를 하나씩 순서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문장이 길어질수록 초반 맥락을 놓치기 쉬웠다. 글은 이를 '중국어 속삭임 게임'에 비유한다. 반면 트랜스포머는 문장 전체를 함께 살피며 단어들 사이의 관계와 맥락을 훨씬 잘 파악한다. 오늘날의 GPT, Claude, Gemini 같은 최전선 모델도 기본적으로 이 구조를 사용한다.
2020년 등장한 GPT-3는 이른바 스케일링 법칙을 강하게 뒷받침했다. 즉, 모델의 연산량·학습 데이터·파라미터를 늘리면 성능도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예측하기 어려운 과학 실험의 영역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자본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갔다. GPT-3가 세상에 AI의 능력을 증명했다면, ChatGPT는 그 능력을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사용성으로 바꿔 놓았다.
실험 중심 과학에 '소프트웨어의 속도'를 더하다
전통적으로 벤처캐피털은 소프트웨어를 선호했다. 소프트웨어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빠르게 제품을 수정하며 사업 모델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과학은 오랫동안 비싼 시행착오의 과정이었다. 연구팀은 무한히 넓은 가설 공간에서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몇 가지를 골라내고,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실험으로 검증해야 했다. 그러나 AI는 이 과정의 경제성을 크게 바꿨다. 학습된 모델은 탐색, 시뮬레이션, 설계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거나 앞당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자와 분자의 세계에 소프트웨어식 확장성을 부여한 것이다.
글쓴이는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거대한 결과를 내는 현상을 찰리 멍거의 표현을 빌려 "롤라팔루자 효과"라고 부른다. AI가 바로 하드테크의 가장 큰 병목, 즉 느리고 비싼 탐색·실험 과정을 공격하면서 하드 사이언스의 가치와 투자 매력이 다시 가격 매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이미 여러 산업에서 확인된다.
- AlphaFold는 단백질 구조 예측 시간을 수개월에서 수초 수준으로 줄였고, 약 2억 개 단백질의 예측 구조를 무료로 공개했다.
- Insilico는 AI로 질병 표적을 찾고 분자 후보를 설계해, 통상 6~10년이 걸릴 수 있는 과정을 약 30개월 만에 인간 대상 임상시험 단계까지 끌고 갔다. 그 사례가 Rentosertib이다.
- Proxima Fusion은 금속을 실제로 절단하거나 장치를 만들기 전에 AI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스텔러레이터 방식 핵융합 발전소 전체를 설계했다. 수십 년간 물리학자들을 괴롭혀 온 설계 주기를 크게 줄일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글은 플랫폼 전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 새로운 기술이 현실을 바꾸려면,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창업자의 의지와 비전도 필요하다.
3. 한 명의 창업자가 만들어 내는 모방의 물결
초기 단계 투자자의 특권은 결국 단 한 사람, 즉 한 세대가 '가능하다'고 믿는 범위를 바꿀 사람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이것이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 역사에는 그런 인물들이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SpaceX를 통해 발사 비용의 기준을 바꾸고 우주 경제의 길을 열었다. 데미스 허사비스는 DeepMind와 AlphaFold로 단백질 연구의 가능성을 넓혔고, 제니퍼 다우드나는 CRISPR를 통해 유전자 편집의 의미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이런 선례가 쌓이면, 사람들은 현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또한 어려운 문제를 푸는 일이 큰 상업적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고, 매주 성장률을 증명하는 회사 대신 5년 단위의 장기 목표에 맞춰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인식하게 된다.
"더는 기술 분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광고 클릭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 진보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을 하느냐'가 지위와 정체성이 되다
문화도 바뀌고 있다. 뛰어난 창업자들은 대담한 세계관과 사명을 내세워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뛰어난 인재들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목표에 자신의 시간을 쓰는 것을 높은 지위의 선택으로 여긴다.
이때 회사의 성공 가능성은 때로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자신이 중요한 문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AI 이전에 사업 방향을 정한 창업자들 가운데 일부가, 이제 자신이 하는 일이 충분히 크고 중요한지 불안해한다고 전한다. 실제로 팀원들이 하드 사이언스 기업으로 옮겨가거나, 창업자 본인도 더 거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FOMO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모방적 성향이 작동한 결과다. 누군가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해내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4. 지정학이 기술 자립과 자본 투자를 밀어 올리다
AI와 창업자들의 성공 사례 외에, 하드 사이언스의 부상을 이끄는 또 하나의 핵심 변수는 지정학이다.
세계 무역은 오랫동안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기대어 돌아갔다. 각국이 가장 잘하고 비용 효율적인 일을 맡으면, 전 세계는 더 낮은 비용과 높은 편의성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 국가의 산업 전략은 효율보다 통제와 자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누가 가장 싸게 잘 만드느냐"보다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이 변화가 국방, 바이오, 핵심 광물, 컴퓨팅, 우주 같은 하드 사이언스 전반에 대규모 자본을 흘려보내고 있다.
국방: 수입하던 것을 직접 만드는 시대로
국방에는 원래부터 국가 주권과 직결되는 핵심 영역이 있었다. 핵무기, 미사일, 잠수함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독자적 군사력과 항공우주 산업인 '포르스 드 프라프', 그리고 미국·영국·러시아의 독자적 방산 대기업 체계가 그 예다.
다만 이런 독립성은 일부 강대국의 특권이었고, 대부분의 국가는 국방 장비를 수입해 왔다. 냉전 이후에는 국가들이 가장 잘하는 분야를 나눠 맡는 방식으로 무기 생산도 국제 분업에 깊이 들어갔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계산을 바꿨다. 그동안 외주와 수입에 의존하던 많은 품목이 이제는 "반드시 국내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방위 산업은 다시 활기를 얻었고, 야심 찬 젊은 창업자들이 뛰어드는 분야가 됐다. 미국의 Mach, 프랑스의 Harmattan 등이 그 흐름의 사례다.
바이오: 코로나19가 드러낸 공급망의 취약성과 역량
제약 산업은 세계화와 비교우위가 가장 잘 드러난 분야였다. 의약품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환자에게도 사회에도 가장 이롭다는 논리는 강력했다. 이에 따라 인도는 세계의 제네릭 의약품 생산기지가 되었고, 중국의 WuXi Biologics 같은 기업은 서구권의 화학·바이오의약품 제조를 사실상 떠받쳤다.
미국은 연구개발에서는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면서, 생산 후반부는 해외에 맡겨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SARS와 에볼라 같은 전염병은 이미 경고 신호였지만, 진짜 전환점은 COVID-19 팬데믹이었다.
팬데믹은 두 가지 상반된 사실을 동시에 보여줬다.
- 취약성: 서구 국가들은 마스크, 면봉, 백신용 바이알조차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공급망이 지정학적 경쟁국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 역량: 바이러스 유전체가 공개된 뒤 불과 11개월 만에 mRNA 백신이 개발됐다. 기존 최단 기록이 약 4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이후 미국은 특정 "우려 대상 생명공학 기업"과 연방정부의 거래를 제한하는 BIOSECURE Act를 통과시켰다. 글쓴이는 이 법이 바이오 주권 강화 흐름에 사실상 쐐기를 박았다고 본다. 하지만 자본이 바이오로 향한 것은 법안 이전부터였으며, 팬데믹 이후 이미 뚜렷해졌다.
미국에서는 Chai Discovery, Enveda가 주목받고, 중국의 Argo Bio, 인도의 PopVax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바이오 분야에서 큰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창업자들에게 출발점일 뿐이다.
경쟁이 긴급성과 혁신을 되살리다
기술 자립의 파장은 다른 하드 사이언스 영역으로도 계속 번지고 있다.
- 핵심 광물: Phoenix Tailings, Vulcan Elements
- 컴퓨팅·AI: Moonshot, Manus, Etched
- 우주: Apex, Agnikul
국경을 넘어 벌어지는 이 혁신 경쟁은 각국 내부의 잠재력을 깨우고, 부족했던 긴박감을 다시 주입하고 있다. 물론 모든 역량을 무조건 자국 또는 인접국으로 되돌리려는 과도한 니어쇼어링이 일어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장기적으로 세계가 보다 균형 잡힌 지점으로 갈 것이며,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한다.
5. 중요한 분야로 향하는 돈, 그러나 거품의 위험
글쓴이는 하드 사이언스가 중심에 선 이유를 다음처럼 정리한다.
"AI는 발견의 시간을 단축했고, 창업자들은 이를 높은 지위의 일이 되게 했으며, 지정학은 자금 투입을 촉발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기술과 벤처캐피털이 가야 할 '옳은' 방향일까? 글쓴이는 분명한 장점을 인정한다. 과거에는 느리고 중요하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산업에서 본격적인 구축이 이뤄지고 있으며, 뛰어난 인재들이 광고나 단기 소비 서비스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도록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동시에 이 현상은 거품이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거품이라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거품이 꺼지면 상당한 자본 손실이 발생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프라는 오래 남아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
역사적 사례도 있다.
- 1840년대 영국의 철도 열풍(Railway Mania)은 투기와 붕괴를 동반했지만, 영국 철도망의 상당 부분을 형성했다.
- 닷컴 버블은 많은 기업의 실패를 남겼지만, 오늘날의 광대역 인터넷 인프라와 저렴한 클라우드 컴퓨팅의 토대가 됐다.
따라서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적어도 재능과 자본이 중요한 문제로 향하고 있다는 점은 위안이 될 수 있다.
6. 과열 속에서도 지켜야 할 규율
그렇다고 위험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글쓴이는 펀드 운용 업계에서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자본집약적 미래에 투자한다는 명분 아래 대형 펀드와 SPV(특수목적법인)를 조성하는 데 관심이 지나치게 쏠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자금은 실제로 필요하다. 하드테크 기업은 실험실, 제조 설비, 인허가,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위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겹의 투자 구조를 만들어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미래를 내세워 자금을 모으는 이들도 충분히 존재한다.
글쓴이는 이를 찰리 멍거의 또 다른 개념인 "세르피코 효과"에 빗댄다.
"잘못된 일을 하면서 이익을 얻는 사람이 충분히 많아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그 잘못을 폭로하려는 사람에게 그들이 등을 돌리고 위험한 적이 된다."
그러므로 투자자와 창업자는 단지 유행을 좇기보다, 실제 경기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며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최근 기술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플랫폼 전환의 시기이며, 투자자·창업자·소비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글쓴이가 남기는 요청은 분명하다.
"규율과 독립적인 사고, 그리고 끊임없이 밝은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갖고 이 흥미로운 줄타기를 해 나가자."
7. 마무리: 이제 다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글의 마지막은 피터 틸의 오래된 문장을 뒤집어 희망적으로 마무리한다.
"우리는 나는 자동차를 원했는데 140글자를 얻었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우리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자동차 산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AI, 생명공학, 에너지, 국방, 우주, 첨단 제조처럼 현실의 물질세계와 사회 기반을 바꾸는 분야를 다시 진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
하드 사이언스 붐은 과열과 실패, 자본 손실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재와 자본이 모이고, 그 과정에서 남는 기술과 인프라가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글쓴이는 이 흐름을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긍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