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그레이엄은 YC가 21년간 커졌어도 스타트업의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암 치료나 로켓처럼 훨씬 더 거대한 문제를 푸는 팀이 늘었지만, 성공을 만드는 핵심은 여전히 강한 야망, 실행력, 빠른 출시,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창업자다. AI는 제품 개발과 비용 구조를 바꾸고 있지만, 좋은 창업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1. 21년의 YC와 변하지 않는 스타트업의 원리
비비안 셴은 마운틴뷰의 YC 원래 사무실에서 폴 그레이엄을 만나, 그가 겨울 배치 창업자들에게 하던 강연을 앞두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번 배치는 무려 YC의 47번째 배치이고, YC는 21년째를 맞았다.
폴 그레이엄은 같은 강연을 수없이 해왔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법도 하지만, 매번 새로 준비한다고 말한다. 그는 강연 직전에 텍스트 파일을 열고 무엇을 말할지 다시 생각하며, 어쩌면 비슷한 말을 반복할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직접 구성해야 한다고 느낀다.
"매번 강연을 처음부터 준비해요. 아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항상 미리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끼죠."
그는 새 배치에 완전히 새로운 스타트업 원칙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으로 답한다. 기술 분야가 마이크로프로세서든, AI든, 내연기관이든 변화는 크지만, 회사를 시작하고 성장시키는 기본 문제는 계속 비슷하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실 똑같아요. 항상 그랬죠."
2. 더 진지하고 더 거대한 문제를 푸는 스타트업
폴 그레이엄은 과거부터 사람들이 계속 "YC는 이제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해왔다고 회상한다. 2008년 무렵부터 그런 말이 나왔고, YC를 비판하려는 사람들은 과거의 YC는 좋았지만 지금은 망가졌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요즘 YC가 투자하는 회사들이 예전보다 훨씬 진지하고 야심찬 문제를 다룬다고 본다.
과거 YC에는 Reddit처럼 큰 성공을 거둔 회사도 있었지만, 폴 그레이엄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아니다." 반면 최근에는 실제로 미사일과 관련된 문제, 암 치료, 첨단 과학과 산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팀들이 등장한다.
그는 특히 "폭발하지 않고 착륙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같은 아이디어를 예로 들며, 그것이야말로 매우 진지한 야망이라고 말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더 진지한 건 없잖아요."
또한 이번 배치에는 암 치료에 접근하는 회사들도 있다고 설명한다. 암 치료에는 백신처럼 면역 체계를 활용하는 방식도 있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식도 있으며, 어느 경로든 암과 싸우는 시도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중 한 스타트업은 암 환자를 위해 필요할 때마다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폴 그레이엄은 암을 한 번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더라도, 환자에게 필요한 연구와 치료를 계속 제공하면서 조금씩 암에 타격을 주는 전략이 현실적인 승리의 길일 수 있다고 본다.
"암을 한 번에 완치하기는 쉽지 않죠. 어쩌면 조금씩 타격을 주며 이기는 방식이 답일지도 몰라요."
이 대목에서 그는 GitLab 공동창업자 시드 시브란디(Sid Sijbrandij)의 암 투병 경험을 언급한다. 시드는 자신의 암 치료를 마치 스타트업을 운영하듯 체계적으로 접근했고, 해당 스타트업 팀은 사실상 그 과정에서 그의 공동창업자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암을 스타트업처럼 다뤘어요. 그 사람들은 사실상 그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였죠."
폴 그레이엄은 당시 "누군가는 시드가 자기 자신에게 해준 일을 모든 사람에게 해주는 스타트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바로 그 일을 하는 팀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고 말한다. 이는 YC가 단지 투자 네트워크가 아니라, 창업자들이 서로의 삶과 문제를 실제로 돕는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사례다.
3. 무서울 만큼 야심찬 아이디어와 검색의 변화
인터뷰어는 폴 그레이엄이 2012년에 사용한 표현인 "무서울 만큼 야심찬 아이디어(frighteningly ambitious ideas)"를 꺼낸다. 당시 그가 상상했던 여러 아이디어가 지금은 실제로 이루어졌거나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새로운 Google"이다. 폴 그레이엄은 거대 기업을 정면으로 공격해서 이기는 방식은 어렵다고 본다. 대신 세상이 너무 크게 바뀌어 기존 기업의 모델이 낡아질 때, 그 변화 위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할 수 있다. 그에게 OpenAI는 바로 그런 변화의 예다.
"새로운 Google을 만드는 방법은 Google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기존 모델이 구식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그는 OpenAI를 처음 사용했을 때 자신이 더는 예전 방식으로 검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검색창에서 원했던 것은 웹페이지 목록이 아니라 정보 그 자체였고, 그렇다면 AI에게 직접 정보를 물어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내가 검색에서 원했던 건 웹페이지가 아니었어요. 정보가 필요했던 거죠. 그렇다면 왜 AI에게 정보를 직접 묻지 않겠어요?"
이 발언은 AI가 단지 새로운 앱이나 기능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보를 찾고 지식을 다루는 습관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창업자를 움직이는 것은 부자가 되는 꿈만이 아니다
폴 그레이엄은 창업자가 뛰어난 기술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큰 야망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YC를 시작하기 전부터 창업 경험이 있었기에, 스타트업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창업 과정에는 끊임없는 장애물이 있고, 단순히 "해야 하니까 한다"는 의무감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장애물은 의무감만으로 넘기에는 너무 커요. 당신을 계속 밀어붙이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걸 야망이라고 부를 수 있죠."
다만 그는 창업자들이 매일 "언젠가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성공했을 때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동기가 되지만, 일상의 행동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실패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
서버가 멈췄을 때 창업자는 미래의 부를 계산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서비스가 망가지고, 고객이 떠나고, 자신이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뛰어든다.
"창업자를 순간순간 움직이는 건 실패에 대한 공포예요. 재앙이 닥치거나, 바보처럼 보이거나, 서버가 멈추는 것 말이죠."
그는 이를 정성 들여 만들던 모형 기차가 테이블 끝에서 떨어질 위기에 놓인 장면에 비유한다.
"당신은 '이걸 고치면 억만장자가 될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 기차가 떨어진다. 당장 구해야 해'라고 생각하죠."
이렇게 오랫동안 제품과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최근 투자 라운드의 기업가치와 자신의 지분을 계산해보면 자신이 억만장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다. 심지어 폴 그레이엄이 직접 계산해주기 전까지 이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창업자도 있다고 한다.
"10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일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지분 가치를 합치면 내가 억만장자였네'라고 깨닫는 거예요."
5. 야망은 만들어지기보다 드러나는 성향이다
"YC를 거치면서 야망이 부족했던 창업자가 아주 야심찬 사람으로 변한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폴 그레이엄은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답한다. 창업자의 핵심 성질은 대체로 원래부터 존재하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샘 올트먼을 처음 만났을 때를 예로 든다. 샘은 YC에 합격하기 전부터 이미 매우 강렬하고 존재감 있는 사람이었다. 폴 그레이엄에게 이런 경우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일반적이다.
"샘 올트먼은 합격하기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대단히 강렬한 사람이었어요. 그게 예외가 아니라 보통이에요."
야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실제로는 야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길들여졌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 학교, 사회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상황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강하게 주장하는 데 익숙해지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이 야망이 없는 게 아니라, 야망을 보이지 않도록 길러진 경우가 있어요."
그는 스타트업이나 YC를 이력서에 추가할 "스펙" 혹은 명문대 졸업장처럼 생각하는 태도도 비판한다. 스타트업이 실패했을 때 그것은 멋진 자격증이 되지 않으며, 성공했을 때는 오히려 그 자체가 평생의 가장 큰 성취가 된다.
폴 그레이엄은 Harvard에 합격하면 상대적으로 쉬운 전공을 선택해 졸업장을 얻을 수도 있지만, 스타트업에는 그런 안전한 길이 없다고 설명한다.
"스타트업에는 쉬운 전공이 없어요. Harvard에 지원한 뒤 이론물리학을 반드시 전공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즉, 스타트업은 겉으로 멋져 보이기 위한 가장 비효율적인 수단이다. 오랜 시간 힘든 과정을 지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창업자를 멋지게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멋져 보이고 싶다면 스타트업 창업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에요. 사람들이 당신을 멋지게 보기까지 수년간 고생해야 하죠."
6. '강력한' 창업자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
폴 그레이엄은 YC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formidable", 즉 만만치 않고 강력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설명한다. 이 단어는 그와 제시카 리빙스턴이 YC를 시작하기 전부터 사용하던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강력함의 가장 단순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가? 그게 시험이에요."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계속 얻지 못한다면, 실제 영향력이나 추진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강력한 창업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현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강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이에요."
이것이 투자자들이 그런 창업자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자와 창업자는 지분으로 연결되어 있고, 창업자가 고객·인재·자금·시장 기회를 얻어내면 투자자도 함께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따라서 창업자의 추진력은 투자자에게도 직접적인 가치가 된다.
7. AI 시대에도 린 스타트업은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어는 패트릭 콜리슨이 "린 스타트업 시대는 끝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을 언급한다. AI 덕분에 여러 작업을 병렬로 처리할 수 있고, 자금 조달도 쉬워졌으며, AI 에이전트를 통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 적은 돈과 좁은 범위에서 시작하는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폴 그레이엄은 우선 "린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정의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관련 책도 읽지 않았다고 솔직히 밝히며, 자신이 이미 YC에서 지원해온 회사들이 그 개념과 비슷했을 수는 있다고 본다.
"톨킨이 다른 사람들이 쓴 판타지 소설을 전부 읽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나 "적은 돈으로 시작하는 방식이 실패했는가?"라는 핵심 질문에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AI 토큰 비용이 현재 비싸기는 하지만, 이는 GPU 부족 같은 일시적 요인의 영향이 크고, 기술 비용은 장기적으로 계속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동일한 수준의 추론 비용이 시간이 지나며 매우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기술은 항상 더 싸져요. 적은 자본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로켓처럼 자본집약적인 분야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실제 로켓을 만들 돈이 없다면, 설계안을 만들고, 시뮬레이션하고, 전문가에게 보여주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투자금을 유치하면 된다. 핵심은 현재 가진 돈으로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만들고, 투자자가 다음 자금을 낼 만한 중요한 이정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제 로켓을 만들 수 없다면 설계를 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전문가에게 보여주세요. 설득력 있는 이정표에 도달하면 다음 라운드를 받을 수 있어요."
Starcloud의 사례처럼 논문을 쓰고 실제 로켓 발사 일정을 예약한 뒤 자금을 모은 경우도 언급된다. 폴 그레이엄은 로켓 발사 예약만큼 투자자에게 강한 신호는 없다고 농담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창업자의 높은 전문성과 신뢰도가 있었다고 덧붙인다.
8. 폴 그레이엄이 예상하지 못한 AI의 모습
폴 그레이엄은 1980년대에 AI를 공부했다. 당시의 AI는 오늘날과 완전히 다른 종류였고, 그는 그것이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진짜 AI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를 고민해왔다.
그가 과거에 상상한 경로는 단순했다. 먼저 완벽한 파리 수준의 지능을 만들고, 그다음 쥐, 고양이, 원숭이, 인간으로 점차 올라가는 방식이다. 각 단계에서는 해당 동물의 능력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등장한 AI는 정반대였다. 처음부터 꽤 인간적인 글쓰기와 대화를 해내지만, 동시에 허풍을 섞고 사실을 꾸며내며,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내는 모습이었다. 폴 그레이엄은 초기 ChatGPT를 "리포트를 부풀리려는 대학생"에 비유한다.
"우리가 얻은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 전체였지만, 헛소리로 가득했어요."
"초기 ChatGPT는 리포트를 부풀리려는 대학생 같았어요. 아주 인간적이지만, 정확하지는 않죠."
즉, AI는 완벽한 저수준 능력에서 출발해 인간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인간 같은 능력을 어설프게 먼저 보여준 뒤 점차 정확성과 신뢰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 순서는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이다.
"완벽함에서 인간으로 올라간 게 아니라, 인간에서 완벽함으로 가고 있어요. 반대 방향이었죠."
그는 오늘날 AI의 들쭉날쭉한 능력, 즉 어떤 매우 어려운 수학 문제에는 뛰어나면서도 식당 영업시간처럼 평범한 질문에는 엉뚱한 답을 하는 현상도 언급한다. 인터뷰어는 이를 "울퉁불퉁한 지능의 경계(jagged frontier)"라고 부른다.
"AI가 유명한 미해결 수학 문제를 푼다는 이야기는 듣는데, 식당 영업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답을 못할 때가 있어요."
9. AGI는 선이 아니라 넓은 얼룩에 가깝다
일반인공지능, 즉 AGI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폴 그레이엄은 앨런 튜링의 튜링 테스트가 여전히 꽤 좋은 기준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자신이 튜링 테스트의 정의를 다시 찾아봐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AGI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AGI에 가까워졌다는 걸 알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튜링 테스트의 정의를 찾아봐야 했기 때문이에요."
과거 사람들은 AGI가 명확한 결승선처럼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을 넘기 전과 넘은 후가 분명하고, 넘는 순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실제로 가까이 와 보니 그 결승선은 하나의 선이 아니었다.
AI의 어떤 능력은 이미 인간 수준을 크게 넘었고, 다른 능력은 아직 크게 부족하다. 그래서 AGI는 단일한 기준점이 아니라 여러 능력이 불균등하게 분포하는 넓은 영역에 가깝다.
"결승선에 서 보니 그게 넓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승선은 사실 얼룩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 얼룩 위에 있어요."
식당 영업시간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서도 리만 가설 같은 고난도 수학 문제에는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역설도, 바로 이 "얼룩"의 서로 다른 부분에 AI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0. AI가 있어도 빠른 출시와 좋은 아이디어는 여전히 중요하다
폴 그레이엄은 스타트업의 성공을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신제품을 얼마나 빠르게 출시하는가를 꼽아왔다. AI 시대가 되면 이 기준이 바뀌었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AI 도구가 강력해졌어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은 충분히 빠르게 제품을 내놓지 못한다. 출시 속도의 차이는 단순히 코드를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만들지 먼저 생각해내고, 좋은 판단을 내리고, 실제 사용자에게 내놓는 과정 전체의 속도 차이다.
"강력한 AI 도구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번 배치에는 아직 충분히 빨리 출시하지 않는 회사들이 많아요."
"무언가를 만드는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먼저 무엇을 만들지 생각해내야 하죠."
그는 사람들이 "AI 때문에 무엇이 달라졌나"라고 묻지만,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것이 여전히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만 특이하게 달라진 점은 스타트업이 이제 매우 큰 AI 사용료와 GPU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스타트업의 가장 큰 비용은 대체로 직원 급여였다. 노트북과 소프트웨어는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인건비가 압도적인 비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토큰과 GPU에 하루 수만 달러를 쓰는 회사도 등장했다.
"예전에는 급여가 거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GPU와 토큰에 하루 수만 달러를 쓰기도 하죠."
11. YC 배치가 주는 동료와 초기 고객의 힘
폴 그레이엄은 YC의 장점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창업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일인데, YC에서는 같은 시기에 창업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동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창업자는 자기 회사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일반 직장처럼 같은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동료가 많지 않다. 그러나 YC 배치 안에서는 각자 다른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서로 비슷한 문제를 만난다. 기술 문제나 운영 문제에 막혔을 때, 같은 배치의 누군가가 이미 해결했을 수 있다.
"창업은 보통 아주 외로운 일이에요. 그런데 YC는 모두가 자기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하죠."
"기술 문제가 생기면 같은 배치의 누군가도 겪었을 수 있어요. 그냥 어떻게 풀었는지 물어보면 됩니다."
둘째는 그가 "YC의 GDP"라고 부르는 효과다. 배치 안에는 많은 스타트업이 있고, 각 회사는 다른 회사의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 제품의 종류가 무엇이든, 같은 배치 내에서 초기 사용자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시험해보고, 의사결정도 신속하게 내리는 전형적인 초기 채택자다. 적어도 창업자의 제품 설명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당신이 무엇을 팔든, 배치 안의 스타트업 중 일부에게는 팔 수 있어요. 그들은 바로 당신이 원하는 초기 사용자들이죠."
12. 우연에서 시작된 YC의 배치 모델
YC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배치형 액셀러레이터를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초기 아이디어는 작은 금액을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엔젤 투자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대규모 후기 투자 라운드를 하는 벤처캐피털과, 개인 돈으로 투자하는 개인 엔젤투자자는 있었지만, 표준화된 방식으로 소액을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엔젤 투자 회사"는 흔치 않았다. YC는 표준 계약 문서를 사용하고 초기 단계에 적은 금액을 투자하는 조직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창업자들은 투자자가 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회사를 지원하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대학생들이 여름에 Microsoft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여름 인턴 대신 스타트업을 해보게 하면 어떨까?"라는 발상이 나왔다.
"대학생들이 Microsoft에서 여름 인턴을 하잖아요. 스타트업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여름 일자리의 대안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첫 YC 프로그램은 여름에 진행됐고, 원래는 대학생 창업자들을 위한 실험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우리가 진짜 투자자는 아니어도 괜찮고, 그들도 진짜 창업자는 아닐 테니 괜찮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YC는 빠르게 실제 투자자가 되었고 참가자들도 곧바로 실제 창업자로 성장했다.
"우리는 진짜 투자자가 아니고, 그들도 진짜 창업자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우리는 진짜 투자자가 되었고, 그들은 아주 빠르게 진짜 창업자가 됐어요."
특히 여러 팀을 한꺼번에 모으는 배치 시스템은 우연히 발견한 방식이었지만 너무 효과적이어서, YC는 이후에도 계속 그 모델을 유지하게 되었다.
13. 커진 YC와 미래의 조 단위 기업
YC가 커지면서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폴 그레이엄은 "본질적으로는 예전과 같고, 규모만 커졌다"고 답한다.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는 여전히 비슷하며, 규모가 커진 YC도 실제 경험은 작은 그룹들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YC가 "너무 커졌다"고 자주 말하지만, 폴 그레이엄은 배치가 40개 회사였을 때도 사람들은 똑같은 불평을 했다고 회상한다.
"사람들은 배치에 회사가 40개였을 때도 '좋았던 시절은 끝났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죠."
그는 만약 각 창업팀이 약 70개 회사 규모의 작은 그룹 안에서 활동한다면, 그것은 2012년 배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즉, 전체 조직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창업자가 실제로 관계를 맺고 배우는 작은 단위의 밀도다.
다음으로 인터뷰어는 미래의 1조 달러 기업이 어디서 나올지 묻는다. 폴 그레이엄의 답은 특정 산업이나 아이디어보다 먼저 창업자에게 향한다. 미래의 거대 기업은 결국 "적절한 창업자", 즉 앞서 말한 강력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창업자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음 거대 기업은 적절한 창업자에게서 나와요. 특정 아이디어가 핵심이라기보다, 그런 창업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는 아이디어 자체는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보기에는 평범한 반려견 산책 서비스처럼 보이는 분야에서도 예상 밖의 거대한 기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난 창업자가 무엇을 하든, 그 일에는 대체로 잠재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창업자가 과거와 크게 달라질지 묻자, 그는 농담처럼 "로봇이 될 것"이라고 답한 뒤 곧바로 부정한다. YC는 이제 20년간의 데이터를 갖고 있고, 창업자들은 20년 전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우리는 이제 20년치 데이터를 갖고 있어요. 창업자들은 20년 전과 여전히 똑같아 보여요. 20년 뒤에 왜 달라지겠어요?"
14. 마무리
폴 그레이엄의 메시지는 기술 변화가 아무리 빨라도 명확하다. AI가 등장해도 스타트업의 핵심은 좋은 창업자와 끈질긴 실행력이며, 큰 문제를 푸는 야망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결국 위대한 회사는 유행하는 기술만으로 생기지 않고,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창업자에게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