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신 질환 치료제는 여전히 60년 전 기술에 머물러 있는데, 이는 뇌를 단순히 화학 물질이 섞인 '국그릇'으로 보던 낡은 관점 때문입니다. 김성연 교수는 이번 강의를 통해 뇌를 정교한 '신경 회로의 복합체'로 이해하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빛으로 특정 신경세포만을 조절하는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이 어떻게 뇌과학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기술을 통해 마음과 행동의 비밀을 푸는 새로운 발견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 21세기 과학의 마지막 프론티어, 뇌 🧠

반갑습니다, 여러분. 서울대 김성연 교수입니다. 오늘 우리는 뇌의 신경 회로와 그것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있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뇌, 특히 인간의 뇌는 860억 개의 뉴런100조 개의 시냅스 연결을 통해 수많은 전기적,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생리와 심리를 만들어내는 핵심 기관입니다.

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복잡한 기계(Machinery)"라고 불릴 만큼 복잡해서, 지난 100년 넘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1세기 과학의 마지막 남은 프론티어"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전 세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죠.

뇌과학자들은 단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레벨과 스케일에서 입체적으로 연구합니다. 숲 전체를 보기도 하고 나무를 보기도 하며, 나뭇잎의 인맥까지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분자를 연구하는 사람, 회로를 연구하는 사람,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건물에 있는 것처럼 독립적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유전공학과 광학 기술의 발달로 그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유전자 하나를 조작해 특정 뇌 회로를 켜고, 그 결과로 바뀌는 동물의 마음과 행동을 한 번에 관찰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2. 왜 정신 질환 치료제는 60년째 제자리걸음일까? 💊

이 수업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불안(Anxiety)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불안 장애는 성인의 약 30%가 평생 한 번 이상 겪을 정도로 흔하며, 우울증이나 치매 등 다른 질환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사용하는 치료제는 여전히 1963년에 개발된 '디아제팜(Diazepam, 발륨)' 같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매년 아이폰, 갤럭시 같은 혁신적인 새 버전들이 나오는데, 왜 뇌를 고치는 약은 60년 전 기술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 지난 수십 년간 인류는 천연두를 박멸했고 암, 에이즈 치료제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불안 장애 치료제만큼은 멈춰 있는 것일까요?

실제로 통계를 보면 혈압약이나 심장약은 새로운 계열의 신약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신 질환 치료제의 개발은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뇌 속 분자를 몰라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약물이 붙는 수용체 구조를 원자 단위까지 꿰뚫고 있습니다. 문제는 '약이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있습니다.


3. 뇌는 '국그릇'이 아니라 '정교한 회로'다 🕸️

기존의 약물(디아제팜 등)은 뇌 전체에 퍼져서 거의 모든 뉴런의 스위치를 강제로 꺼버립니다(억제). 마치 뇌를 화학 물질이 둥둥 떠다니는 국그릇처럼 취급하는 방식이죠.

뇌는 기능별로 구획이 나눠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동네, 같은 뇌 부위 안에 서로 다른 직업과 성격을 가진 뉴런들이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마치 서울이란 도시에 학생, 의사, 경찰, 소방관 등이 섞여 살듯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고장 난 특정 회로만 고치는 게 아니라 뇌 전체에 '융단 폭격'을 가하고 있으니, 졸음, 기억력 저하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비드 앤더슨(David Anderson) 교수는 이를 아주 적절하게 비유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 오일을 교체하려면 보닛을 열고 정확한 주입구에 오일을 부어 넣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뇌를 치료하는 방식은 마치 보닛을 열고 엔진 위에 오일을 그냥 퍼붓는 것과 같습니다. 운이 좋으면 몇 방울쯤은 필요한 곳으로 들어가겠지만, 대부분은 엉뚱한 곳을 적시며 차를 망가뜨릴 뿐이라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뇌는 국그릇이 아니라 정교한 네트워크의 복합체(Network of networks)"라는 사실을 깨닫고, 뇌 속의 모든 세포와 연결망을 지도화하는 '브레인 매핑(Brain Mapping)'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4. 뇌과학의 판도를 바꾼 기술: 광유전학(Optogenetics) 💡

지도가 생겼다고 끝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길을 가보고 신호등을 조작해봐야 기능을 알 수 있죠. 여기서 등장한 혁명적인 기술이 바로 빛으로 뉴런을 조종하는 '광유전학'입니다.

4.1. 기술적 혁신의 배경

기존의 뇌 연구 방식인 '전기 자극'은 전극 주변의 모든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흥분시켰습니다.

기존의 전기 자극은 마치 피아노 건반을 칠 때 우아하게 선율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으로 '쾅' 내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원치 않는 세포들까지 다 흥분시켰으니까요.

과학자들은 오직 특정 종류의 뉴런만 켜거나 끌 수 있는 도구를 꿈꿨는데, 그 해답은 엉뚱하게도 바닷속 녹조류인 '클라미도모나스(Chlamydomonas)'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생물은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채널로돕신)을 가지고 있었죠.

4.2. 광유전학의 원리

2005년, 스탠포드 대학의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교수팀은 이 녹조류의 유전자를 뉴런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극 대신 광섬유를 이용해 밀리초(ms) 단위로 정밀하게,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특정 종류의 뉴런만 골라서 원격 조종할 수 있게 됐습니다. (...) SF 영화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파란 빛으로 뉴런을 켜고(채널로돕신), 노란 빛으로 뉴런을 끄는(할로로돕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생물학 연구의 기본인 '기능 획득(Gain of function)'과 '기능 손실(Loss of function)' 실험을 뇌 회로 수준에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5. 빛으로 밝혀낸 뇌의 비밀들 🐁

광유전학 기술 덕분에 지난 10여 년간 뇌과학은 폭발적인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수업 시간에 보여드린 영상들처럼 말이죠.

  • 공격성 조절: 순한 쥐의 시상하부 특정 뉴런을 빛으로 자극했더니, 갑자기 장갑을 향해 맹렬히 공격합니다.
  • 갈증과 식욕: SFO라는 부위를 자극하면 즉시 물을 마시고, 또 다른 부위를 자극하면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고지방 음식을 탐식합니다.
  • 보상 회로: 쥐가 특정 행동(코를 구멍에 넣기)을 할 때마다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주었더니, 쥐는 그 행동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도대체 왜 이 기술이 그토록 혁신적이었냐? (...) 이제 신경 회로 분야에서는 비로소 뇌 조직의 특정 타입 뉴런들의 기능을 인과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모든 혁신의 중심에는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이자 공학자로,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을 보며 느낀 절망감을 기술 개발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2025년 한국의 아산의학상을 수상하며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죠.

연구를 하다 보면 "이것이 돈이 될까? 유명해질 수 있을까?" 같은 세속적인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 로드릭 매키넌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저 좋은 과학(Good Science)을 하라." 진실을 쫓고 질문의 본질에 집중한다면 명예와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6. 마치며: 도구가 만드는 새로운 발견 🚀

최근 뇌과학은 그 어느 분야보다 '기술 주도형(Technology-driven)' 성격이 강합니다. 광유전학뿐만 아니라 뇌를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 살아있는 뇌를 찍는 이미징 기술 등이 쏟아져 나왔죠.

현대 생물학의 거장 시드니 브레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의 진보는 새로운 기술(New techniques), 새로운 발견(New discoveries),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New ideas)에 달려 있다. 아마도 정확히 이 순서대로일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만질 수 없었던 것을 조작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 동안 우리는 이 혁신적인 도구들이 어떻게 뇌의 비밀을 풀어냈는지, 그 흥미진진한 여정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슴 뛰는 질문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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