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열흘 정도 중환자실에 계셨고 다행히 고비를 잘 넘기셨다. 중환자실과 대학병원 입원실은 면회에 제한이 많다.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있거나 근처 카페에서 대기한다. 낮에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AI 뉴스 소비를 멈췄다. 일도 거의 멈췄다. 평소라면 챙겨봤을 새 모델, 벤치마크, 누가 뭘 만들었는지 같은 것들이 이 상황에서는 다 멀게 느껴졌다.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바쁘게 살았는가.

Wealth + Health. 이 둘이면 됐는데 말이다.


Wealth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결국 Wealth를 위한 것이다. 커리어를 고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미팅하고, 사업하고, 창업하고, 투자 받고, 협업하고, 영업하는 것.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다. 더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자원과 선택권을 만들려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자주 잊는다. 일은 원래 수단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목적이 되어버린다. 회의가 목적이 되고, 마감이 목적이 되고, 바쁨 자체가 성실함처럼 느껴진다. 커리어라는 이름 아래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시장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느라 바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일에 잡아먹히고 있는지 잘 안보인다.

그래서 나는 Wealth를 단순히 돈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위기 앞에서 얼마나 덜 흔들릴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와 연결된다. 병원은 그걸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치료를 결정하고 시간을 확보하고 불확실성을 견디는 데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힘, 일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여지,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선택권. 이런 것들이 다 Wealth의 일부였다.

이 프레임으로 일을 봐야한다. 지금 이 일이 정말 내 Wealth를 쌓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의 주도권을 키우고 있는가. 이 질문이 생기면 일이 나를 끌고 가는게 아니라 내가 일을 고르게 된다. 기회를 만들고 잡고 버리는 기준도 생긴다.


Health

병원을 오가면 또 하나가 보인다. Health는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

사경을 헤매실 때는 살아 계시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앞에서는 일도, 돈도, 커리어도, 미래 계획도 전부 작아진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뻔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가까운 사람이 크게 다치는 일을 겪고 나면 그 말이 갑자기 현실이 된다. Health가 무너지면 나머지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는다.

그리고 Health는 몸만이 아니다. 수면, 정신적 안정, 관계, 불안을 다루는 힘,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상태까지 다 포함된다. 돌아보면 나 역시 일과 목표를 핑계로 이런 것들을 자주 뒤로 미루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돈과 등가교환 하는건 지속할 수 없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버텨주지 못하면 집중도, 판단력도, 관계도 같이 무너지고 Wealth도 오래 못쌓는다. 내가 원하는 나, 내가 원하는 생, 내가 원하는 목표로 가려면 결국 이 둘이 같이 커져야 한다고 느꼈다.

개인의 번영을 위해서는 Wealth + Health의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더 건강하고 단단해질거라 생각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어떻게 가능하게 할까를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AI는 레버리지다

AI에 대해서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AI 뉴스를 끊고 나서야 오히려 AI를 어떻게 써야겠다는게 더 명확해졌다. 개인에게 AI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Wealth와 Health를 지키고 키우는 레버리지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예를 들어, 나는 안좋은 상황이 오면 over-thinking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어머니 상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사고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보험사와 경찰서와 소통은 어떻게 해야할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머릿속에서 끝없이 가지가 뻗었다. 그래서 그 over-thinking을 AI에게 위임했다.

AI에게 시킨게 대단한건 아니었고 리파지토리 하나에 디렉토리 구조 잡아서 사고 자료와 환자 상태 등 확보한 모든 데이터를 파일로 넣었다. 그리고 다중 우주 시뮬레이션 처럼 가능한 경우의 수를 쭉 그리게 하고,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 그리고 가장 확률적으로 높은 상황을 나눠 정리하게 했다. 사고 처리와 보험 처리에서도 어떤 서류가 필요하고 어떤 순서로 확인해야 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정리하게 했다. 이런 부분은 어떤 순간에는 웬만한 손해사정인보다 더 차분하게 정리해준다고 느꼈다.

물론 AI가 판단을 대신한 것은 아니다. 의학적 판단은 전적으로 의사와 의료진이 내렸고 이외 의사결정은 아버지 주도로 가족이 함께 했다. 최종 확인과 판단은 사람이 해야 했지만 AI는 흩어진 정보와 가능성을 구조화해줬고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의 불안을 많이 줄여줬다.

불안은 정보가 없어서 생기기도 하지만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머릿속에서 그 모든 가능성을 혼자 굴리느라 생기기도 한다. AI는 그걸 밖으로 꺼내 정리해줬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고 어떤 가능성이 높고 지금 무엇부터 하면 되는지를 보이게 해줬다. 그게 생각보다 컸다.

Wealth 측면에서도 AI는 강력하다. 실행력을 높이고, 실험 비용을 낮추고, 더 많은 기회를 탐색하게 해줬다. 돈을 벌게 해주는 것만 Wealth가 아니고 돈 나갈걸 안나가도 되게 해주는 것이 더 큰 고통을 줄여준다는 사업 관점의 교훈도 배웠다.


마치며

이번 일을 겪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지금 돌아보니 삶의 중심이 AI 였을 때 AI는 오히려 바쁨과 불안을 증폭시켰었다. 더 빨리 따라잡아야 하고, 더 많이 써봐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실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반대로 삶의 중심이 Wealth+Health라면 AI는 굉장히 좋은 도구다.

개인에게 Wealth+Health는 원하는 삶을 떠받치는 가장 현실적인 기반이고 이를 이 기반을 더 잘 지키고 쌓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앞으로도 나는 AI를 계속 접하고 배우고 무언가를 함께 만들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기술 자체를 좇기보다, 그것이 내 삶에 실제로 무엇을 더해주는지를 먼저 보려고 한다. 내 Wealth를 키워주는지, 내 Health를 지켜주는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게 하는지.

지금은 그 기준으로 AI를 쓰고 싶다. 나와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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