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의 이어지는 이야기 : 태호의 Insight #29

이게 몇 년 전 관리자로 일할 때의 내 캘린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회의와 업무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캘린더이긴 하다. 창업가였고, 이후에는 스타트업의 임원과 관리자로 살았으니 매주 이런 살인적인 일정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회사에는 늘 급한 일이 있고, 사람들은 나를 찾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 했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은 이 빽빽한 일정이 다 회사 일이라는거다. 나는 가정도 있고 자녀도 있는데 저 캘린더를 보면 나는 24/7 회사 일만 하고있다. 가족 행사는 아내가 챙기거나, 없는 시간을 겨우 쪼개서 맞췄다. 그러면서 무너지는 몸과 마음은 어른이니까 알아서 버텨야 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허허허. 이러니 일상이 고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제정신으로 사는게 가능했었겠는가. 좋은 의사결정은 커녕 번아웃 안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매니저들의 매니저가 되었을 때 부터,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1. 30대 중후반 이상이고, 2. 회사에서 팀장급 이상이며, 3. 가장이거나 아이가 있으면, 다들 높은 확률로 지쳐 있었다. 겉으로는 다들 괜찮은 척한다. 회의도 하고, 리뷰도 하고, 채용도 하고, 가족 행사도 어떻게든 간다. 그런데 조금 깊게 이야기해보면 다들 같은 말을 한다. 너무 피곤하다고. 머리가 잘 안 돈다고. 좋은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저 버티기만 하는 느낌이라고.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때의 우리는 일을 잘하고 싶었다.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회사가 잘되길 바랐고, 팀원들이 성장하길 바랐고, 맡은 일은 성과가 나길 바랐다. 문제는 그것들이 내 삶의 다른 중요한 것들을 계속 밀어냈다는 데 있었다. 수면은 줄이고, 식사는 대충 때우고, 운동은 미루고, 가족과의 시간은 럭셔리한 것이었다.

일을 잘하려고 한 선택들이 일을 오래 잘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을 만들고 있는 것도 모른채.


그러다 LLM과 AI 에이전트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생산성 도구로 봤다. 코딩을 더 빨리 하고, 리서치를 더 빨리 하고, 보고서 초안을 더 빨리 작성하고, 반복 작업을 줄여주는 도구.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그런데 오래 써보니 더 중요한건 따로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만 업무 진척이 됐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게 핵심이다. 아침에 몇시간 집중하여 하루 업무 목적과 방향을 잡고 AI 에이전트들에게 일을 지시한다. 이후 나는 중간중간 확인하고, 필요하면 살짝 개입한다. 어떤 일들은 밤새 시켜놓고 아침에 확인한다. 하도 많이 시켜봤더니 이제는 이 정도 일은 어떻게 시키면 얼마나 걸려 어떻게 나온다는 감각도 생겼다.


내 캘린더는 이제 이렇게 바뀌었다.

완전히 다르다. 예전처럼 업무와 미팅으로 빽빽하지 않다. 수면, 영양, 운동이 먼저 들어가 있고, 그 사이에 큼직한 미팅이나 약속이 있다.

그리고 업무는 그 사이사이에 계속 돌아가고 있다. 내가 캘린더에 업무 블록을 촘촘히 넣어두지 않아도, AI 에이전트들은 빈 시간에도 돌아간다. 내가 운동하는 동안에도, 밥을 해먹는 동안에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잠자는 동안에도 돌아간다.

이제 나는 수면 충분히 챙기며 밤에 일하지 않고, 끼니를 거스르지 않고 식단에 따라 내가 밥을 해먹을 수도 있으며, 운동할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게 아니라 운동부터 하고 업무를 시작할 여유가 생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의 고민을 더 잘 들어주고 AI로 함께 해결해보고, 더 가족들에게 사랑 받는 남편과 아빠와 아들이 되었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생의 어려운 일들이 하나도 아니고 갑자기 몰려서 터졌다.

전 같았으면 회사 일에 이미 120%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 가족에게 힘든 일들이 겹치면 거의 멘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무스하게 잘 넘기고 처리했다. 위기에서도 한 번 해보자 싶더라. 이런 상황에서 패닉하지 않고 좋은 의사결정들을 해나가기 위해서 그동안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잠도 잘자고 영양 잘 챙겨왔던거 아니겠냐 싶었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AI 에이전트들에게 적극 업무 위임하고 도움을 구하니 양자택일에 몰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남들은 알 수 없는 일이고 가족들에게도 나는 언제나처럼 든든한 가장으로 보였을테지만, 나는 안다. 이거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뿌듯해도 될 일이라는 것을.


이쯤되자, AI가 굉장히 고맙게 느껴졌다. AI 에이전트는 그저 내가 요금을 지불하고 개발과 업무 생산성을 올리는 도구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제 AI를 통해 내가 항상 원하던 나의 모습으로 더 사람답게 살게 되었다고 깨닫는다.

항상 일 밖에 모르고 창업가/개발자/관리자라는 정체성으로만 살던 내가, AI 에이전트라는 내 똑똑한 분신들을 만들고 활용하면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더 성숙하고 잘 역할하게 되었다는게 감사했다. 감사한 일이다.


AI의 힘은 여기에 있다. 내가 업무를 24시간 붙잡고 있는다고 비례해서 생산성이 늘어나는게 아니다. AI를 통해 우리가 인간답게 살면서도 생산성을 올리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요즘 실감하고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방향으로 강화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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