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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에서 창업자분들이 많이 실리콘밸리로 탐방을 오시고 있고, 저에게 미팅을 요청하시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창업자분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한국 회사가 미국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가 한국인으로서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사업을 해왔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 시장은 전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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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2일
읽는 시간
11
언어
한국어
창업2025년 3월 22일한국어

최근에 한국에서 창업자분들이 많이 실리콘밸리로 탐방을 오시고 있고, 저에게 미팅을 요청하시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창업자분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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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사가 미국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가 한국인으로서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사업을 해왔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 시장은 전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단일 민족 국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창업자들은 한국에서 수십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업 환경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특수한 환경에서는 특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한국 기업의 고객 페르소나는 창업자의 가족, 친지, 선후배 등의 범위 내에 존재합니다. 고객에 대한 학습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수십 년 살며 자연스럽게 고객에 대한 이해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다수 한국 창업자들은 본인의 문제나 잘 아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직관적' 제품 개발 방식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특수한 한국 시장에서는 바이럴이 무척 빠르게 일어납니다. 제품을 만들어 지인들과 커뮤니티에 알리면, 전 국민이 두세개쯤은 속해 있는 카톡방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집니다. 창업자가 명문대 출신이고 사용자를 만 명 정도만 확보해도 주요 언론사에서 특집 기사로 다뤄줍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사업이 쉽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 등으로 한국에서의 사업도 매우 어렵다는 것은 저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모든 일들이 매우 특수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사업을 하던 한국 창업자들이 한국을 벗어나서 제품 개발을 ‘직관적’으로 하게 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행 착오는 착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내가 한국에서 사업을 잘 한 이유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높다’라는 착각이 무의식 중에 창업자의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한국에서의 특수한 경험을 미국 사업에 계속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창업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 시장은 인종, 언어, 지역, 문화로 엄청나게 쪼개져 있는 사회입니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다양성이 있는 사회가 더 ‘보편적’입니다. 한국이라는 시장은 ‘보편적’인 글로벌 시장의 ‘특수한’ 일부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시장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제품 개발을 접근해야 할까요? 당연히 미국 땅에 떨어진 한국인 창업자는 고객에 대해서 모릅니다. 내가 고객에 대해서 모른다라고 인정하고 나면, 당연히 고객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customer discovery라는 개념을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자주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내가 고객을 모르면 discovery부터 해야 합니다.

고객을 만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시장의 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시장이 크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어떤 제품을 가져오면 매출을 10배 뻥튀기 할 수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 시장 내의 어떠한 하위 세그먼트의 시장 크기가 한국 시장 전체보다 클 수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customer discovery는 우리가 타겟으로 삼아야 하는 세그먼트를 찾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기업들이 어떤 속성을 공유하고 있는 지 패턴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 패턴을 찾게 되면, 시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는 깊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큰 매출을 내려면 스타트업부터 중견기업 대기업까지 다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제품들의 기능이 횡으로 확장되고, 상대적으로 깊이는 떨어집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특정 세그먼트를 깊게 공략해도 큰 회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좁지만 깊은 제품들이 큰 회사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Customer Discovery를 통해 세그먼트를 정의하고 집중해서 만나다 보면, 나의 고객의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게 됩니다. 특정 세그먼트의 고객들에 대한 깊은 이해는 relevant solution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창업자에게 부여합니다. 반면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모두를 위한' 제품들이 미국 시장에서 irrelevant하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 시장은 그 다양성으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시장을 모두 깊이 이해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미국에서는 창업자들 상당수가 이민자인데다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창업자들도 '고객을 모른다'는 공통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고객 이해도 측면에서 이민자와 비이민자 간의 출발선이 한국보다 더 공평합니다.(만약 우크라이나 창업자가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공평할까요?)

예외도 있지만, 제가 만나본 성공적인 창업자들은 배경에 관계 없이 customer discovery부터 시작하고, 학습된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사업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마치 기초 체력 훈련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고객과 접점을 일정 빈도로 유지합니다.

직관이 아예 쓸모가 없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discovery를 통한 깊은 이해를 쌓은 뒤에는 좋은 직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Hierarchy of competence 모델 빨간색 영역에서 출발해서 파란색까지 가는 것, 그것이 새로운 제품을 런칭할 때마다 거쳐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셔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요? 투자자 만나지 말고, (고객이 아닌)한국 사람 만나지 말고, 저도 만나지 말고, 고객부터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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