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 그레이엄과 레니 라치츠키는 AI가 일의 방식과 직업 정체성을 급격히 바꾸는 지금, 유명한 커리어 조언인 '레고를 넘겨줘라'를 어떻게 다시 해석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핵심은 변화와 상실을 솔직히 애도하면서도, AI를 무조건적인 대체자가 아니라 관리·감독해야 할 유능하지만 미숙한 인턴처럼 다루는 데 있다. AI에게 반복 업무를 맡길 수는 있지만, 비전·판단·책임·신뢰·좋은 것에 대한 감각까지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대화의 결론이다.
1. '레고를 넘겨줘라'는 조언의 출발점
레니는 AI가 사람들의 일을 가져가고, 모두가 AI에게 자신의 "레고"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며 대화를 시작한다. 몰리의 오래된 조언은 원래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 때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 팀, 업무 영역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AI가 등장한 지금에는 이 조언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겼다.
"우리는 새 직원을 뽑았습니다. 당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직원이죠.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6개월 안에 그 직원이 당신의 일을 가져갈 겁니다. 누가 그러고 싶겠어요?"
몰리는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급성장을 직접 경험하며 이 개념을 만들었다. 2007년 구글에 입사했을 때 회사 전체는 약 1만 명 규모였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은 9개월 만에 25명에서 125명으로 커졌다. 이후 직원 500명, 사용자 8천만 명 수준이던 페이스북에 합류했고, 5년 뒤 회사를 떠날 때는 직원이 5,500명, 사용자는 10억 명 이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이 구축한 업무와 정체성에 얼마나 강하게 매달리는지 보았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블로그, 제품 기능, 시스템의 일부를 만들고 그것을 잘하게 된다. 그러면 그 일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 '내가 누구인가'를 구성한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당신은 다음 일을 맡으세요"라는 요청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저항하게 된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아는데 왜 넘겨야 하죠? 혹시 이게 내가 재미있어하는 유일한 일이라면요?"
몰리는 이를 유치원 아이들과 레고 더미에 비유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도 각자 탑을 만들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누군가 와서 자신이 만든 탑을 가져가려 하면 본능적으로 밀어내며 "저리 가!"라고 한다. 그러나 함께할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은, 기존 탑을 빼앗긴다는 뜻만이 아니라 새롭고 더 흥미로운 것을 만들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레고를 넘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내 탑을 똑같이 만들라고 지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 탑의 미래를 정말로 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이에요."
처음에는 이 조언이 페이스북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에만 유효하다고 생각했지만, 글이 공개된 뒤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었다. 대형 유통기업 직원부터 팀을 2명에서 4명으로 키운 나이지리아 창업자까지,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의 변화 경험을 설명하는 언어로 이 비유를 받아들였다. 몰리는 이것이 결국 성장 자체보다 더 큰 주제, 즉 변화를 겪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
2. AI 시대에도 여전히 맞는 원칙: 변화는 무섭고, 배움은 생존이다
몰리는 AI 이전의 레고 조언 가운데 여전히 유효한 핵심이 많다고 말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회사가 성장 여부와 상관없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따라서 레고의 본질은 '빠른 성장 기업에서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최선의 자신이 되는 법이다.
그녀가 과거에 레고 글을 두 문장으로 요약했던 방식은 이렇다.
"빠른 성장과 변화 속에서 당신의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스로를 불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에 올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결국 괜찮아질 겁니다."
다만 레니는 AI 시대에는 두 번째 문장조차 예전처럼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정말 괜찮아질까?'라고 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몰리는 변화 자체가 무섭고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변화 앞에서 불안, 분노, 상실감, 피로를 느끼는 것은 망가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정상적인 인간 반응이다.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당신이 미쳤거나 망가진 게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일 뿐이에요."
특히 그녀는 지금 기술 업계에 슬픔과 번아웃이 넓게 퍼져 있다고 본다. AI가 열어 주는 흥분과 기회도 분명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좋아하던 일의 방식, 익숙한 팀 구조, 전문성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이 감정을 무시한 채 "미래는 멋질 거예요. 그냥 적응하세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구성원들은 더 고립된다.
몰리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미래는 아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의 것이 될 겁니다."
AI 환경에서는 불과 6개월 전에 확실하다고 믿었던 지식도 빠르게 낡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아느냐보다 내일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회사 성장 곡선은 곧 개인의 역할과 역량이 변화해야 하는 속도를 보여 주는 그래프이기도 하다.
그녀는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회사와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데도 과거의 방식만 붙들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안전해 보이지만, 변화 속에서는 가장 안전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3. 엔지니어의 상실감과 팀 구조의 붕괴
레니는 특히 엔지니어링 직무가 지난 몇 년간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과거 엔지니어의 일은 직접 코드를 쓰고, 문제를 해결하고, 긴 시간 몰입하며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AI에게 코드를 지시하고, 여러 에이전트가 만든 결과를 검토하며, 오류를 고치고, 다시 지시하는 일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이를 "노를 젓는 일"에서 "키를 잡는 일"로 바뀌는 변화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몰리는 모두가 키를 잡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지금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나는 키를 잡고 싶지 않아. 나는 노를 젓는 게 좋았어.'"
여기에는 단순한 기술 적응 문제가 아니라 직업 정체성의 상실이 있다.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느꼈던 몰입감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자신이 과연 새 역할도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해지는 것이다. '노 젓기'를 좋아했던 것과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몰리는 한 기술 회사 직원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는 회사가 커지고 더 체계화되면서 예전만큼 일이 즐겁지 않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작은 회사 특유의 자유와 창의성이 줄어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그는 자신의 직업 자체가 무엇으로 바뀌고 있는지 몰라서 슬퍼하고 있었다.
"변화는 힘들어요. 훌륭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변화에 대해 억지로 긍정적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힘들다고 말해도 돼요."
AI는 개인의 업무뿐 아니라 팀의 구조도 바꾼다. 이전에는 5명에서 10명의 엔지니어가 함께 일하는 팀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더 적은 인원과 더 많은 AI 도구·에이전트가 결합한 형태가 늘어난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동료와 협업하기보다 AI와 대화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고립감이 커질 수 있다.
몰리는 기업이 단순히 생산성만 보고 인간을 조직 구조에서 제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비용 효율과 자동화는 높일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만족감과 협업의 즐거움까지 사라지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인간을 완전히 빼고도 더 높은 효율을 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불행해진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최고의 성과를 만들지 못합니다."
4. AI 공포 서사와 번아웃: 모두가 망하는 것도, 모두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AI가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공포 서사가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있다고 본다. 몰리는 AI를 이유로 내세우는 대규모 해고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로는 기업의 과잉 채용, 경영 실패, 비용 절감 결정에 가까운데도, 회사가 이를 AI 탓으로 포장한다고 비판한다.
"AI 때문에 해고한다고 부르는 많은 일은 사실 헛소리예요. 회사가 너무 많이 채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AI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AI를 '자신보다 열 배 더 똑똑한 신입 직원'처럼 받아들이고,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 뒤 곧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변화에 기꺼이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스스로를 불필요하게 만드세요"라고 요구하면서 그다음에 일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그 누구도 자신의 레고를 넘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몰리는 기자 마누시 조모로디와의 대화에서 얻은 관점을 소개한다. 흔한 질문은 "내 직업이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지만, 더 유용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내 직업이 계속 존재하지만, 6년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고 믿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이 관점은 직업이 반드시 그대로 유지된다고 낙관하는 것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비관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직업의 형태가 계속 재발명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 재설계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자는 제안이다.
레니가 실시한 기술 종사자 설문에서는 2025년 44%였던 번아웃 응답이 2026년 55%로 뛰었다. AI 도구가 생겼으니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 다른 팀보다 늦으면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불안, 보상은 그대로인데 기대치만 높아지는 현실이 그 배경이다.
"이제는 'AI 도구가 있으니 왜 더 많이 못 하죠?'라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요구받고, 꼭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죠."
몰리는 변화의 속도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고 말한다. 불과 6개월 전에는 조직들이 "어떻게 하면 모두가 AI를 더 많이 쓰게 할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이제는 "AI를 잘 쓰고 있는가?", "엉망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기준이 몇 달 단위로 뒤집히면, 사람들은 계속 적응하느라 소진된다.
그러나 설문은 한 가지 중요한 반대 흐름도 보여 준다. 약 절반의 사람은 지금을 커리어 최고의 시기라고 느낄 정도로 신나고 행복하다고 답했다. 특히 작은 팀에서 일하거나, 자율성과 권한이 크고, AI가 자신의 능력을 증폭시킨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그렇다.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지금이 커리어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느낍니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그만큼 가장 신나게 일하고 있기도 해요."
반대로 디자이너들은 상대적으로 불만족도가 높았다. 모두가 AI로 디자인 시안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디자인 전문가의 판단이 쉽게 침범받고, 제품 출시 속도는 빨라졌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합의하며 다듬을 시간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5. AI 슬롭과 생산성 착시: AI는 천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인턴이다
레니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하려고 만든 AI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이 청소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AI 슬롭(AI slop), 즉 검토되지 않은 AI 생성물과 저품질 결과물이 조직 안에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몰리는 AI를 '초지능의 완벽한 직원'처럼 보는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AI는 맥락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틀리거나 피상적인 결과를 내놓기 쉽고, 사람의 검토와 반복 수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AI를 더 정확히 이렇게 부른다.
"AI는 인턴이에요. 종종 형편없는 인턴이죠. 저는 게으른 인턴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라면 인턴이 만든 발표 자료를 검토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임원에게 보내지 않는다. 내용을 확인하고, 빠진 맥락을 채우고, 여러 차례 고친 뒤에야 책임을 지고 전달한다. AI 결과물도 정확히 그렇게 다뤄야 한다.
"인턴이 만든 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상사에게 보내지는 않잖아요. AI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복사해 보내는 순간, 원래 그 결과물의 품질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부담은 그 결과물을 받는 사람에게 넘어간다. 누군가는 엉성한 문서, 전략, 코드, 디자인을 다시 읽고 검증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 과정은 조직 전체의 피로와 불신을 키운다.
몰리는 특히 CEO가 AI가 쓴 전략 메모를 거의 손보지 않고 조직에 보내는 모습을 우려한다. 이는 단지 한 문서의 품질 문제가 아니다. 조직에 "생각과 전략까지 외주화해도 된다", "보낸 결과물의 품질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많은 회사가 토큰 사용량, 코드 줄 수, AI 활용 횟수 같은 지표를 지나치게 추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과거에 주차장에 몇 시에 출근했는지, 슬랙 메시지를 얼마나 보냈는지, 코드 줄 수가 몇 줄인지 세던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러닝머신 위에서 최대 속도로 달리면서도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은 생산성과 효율성이다. 생산성은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고, 효율성은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내는 능력이다. AI는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재작업·보안 사고·검토 비용을 늘린다면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대화에서 언급된 엔지니어링 사례에서는 AI로 개발 생산성은 늘었지만, 다시 작성해야 하는 코드 양이 8배 증가했고 보안 문제도 많아졌다고 한다. 즉, AI 도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얼마나 책임 있게 만들었는가에 달려 있다.
6. 인간에게 레고를 주는 것과 AI에게 맡기는 것은 다르다
몰리가 AI 시대에 기존의 레고 조언을 수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람에게 일을 넘기는 것과 AI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업무를 완전히 넘길 때는 결과에 대한 소유권과 책임까지 함께 넘길 수 있다. 그래서 내 머릿속 공간이 실제로 비고, 새 기회를 맡을 수 있다.
그녀는 인간에게 레고를 넘기는 최선의 방법을 과장된 비유로 설명한다.
"레고를 넘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 얼굴에 던지고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는 거예요."
물론 실제로 무책임하게 넘기라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상대가 나와 똑같은 탑을 만들도록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 일의 미래를 그 사람에게 맡기라는 뜻이다. 계속 간섭하고 승인하고 수정하려 한다면 진짜 위임이 아니다.
하지만 AI에게 일을 맡길 때는 그렇게 떠날 수 없다. AI가 초안을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고 분석을 하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그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즉 AI는 작업을 대신할 수 있지만, 감독 부담과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로봇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사람에게 레고를 건네고 완전히 떠나는 것과 다릅니다. 당신은 여전히 감독하고, 최종 결과를 소유하고, 책임을 집니다."
이 때문에 AI는 업무량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종류의 정신적 부담을 만들 수 있다. 여러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업하면, 사용자는 계속 알림을 받고 질문에 답하고 막힌 부분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레니 역시 여러 도구와 에이전트를 돌리는 것이 흥미롭지만, 하루 종일 "이건 어떤가요?", "여기서 막혔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할까요?"라는 요청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몰리는 이를 관리자의 역할에 비유한다. AI를 잘 쓰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맥락을 제공하고, 기대치를 분명히 하고, 결과물을 교정하고, 피드백을 주고, 기준을 세우는 능력이다. 즉 이제는 관리자 경험이 없던 사람도 AI를 쓰는 순간 관리자가 된다.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관리자가 된 셈이에요."
AI는 현재 특히 초급 직원보다도 더 초급인 직원에 가깝다. 뛰어난 시니어 엔지니어에게는 대략적인 방향만 주고 결과를 믿을 수 있지만, AI는 훨씬 더 촘촘한 지시와 반복 검토를 요구한다. 그래서 AI 활용은 누구에게나 쉽거나 즐거운 변화가 아닐 수 있다.
7. 공포 대신 기회로: 직업을 지키기보다 미래의 직업을 설계하기
기존 레고 조언에는 "무언가를 넘기면 새 기회가 생긴다"는 전제가 있었다. AI 시대에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두 번째 전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AI에게 일을 넘긴 뒤 나에게 남는 기회가 정말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몰리는 이 불안을 이해하면서도, 현재의 공포 서사에만 갇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AI가 모바일 혁명처럼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산업과 직업을 많이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AI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자동화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해 준다면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입니다."
그녀는 법률, 저널리즘, 디자인, 제품 관리, 엔지니어링처럼 전문성이 강한 직업일수록 '내 전문 지식을 숨기고 보호해야 대체되지 않는다'는 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의 역할 정의에 매달리는 것보다, 미래에 그 직업이 어떤 모습이 될지 설계하는 쪽이 더 나은 전략이다.
"미래의 변호사는 계속 존재할 겁니다. 다만 3년이나 6년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일 수 있어요. 당신은 그 미래를 설계하는 데 참여하고 싶나요, 아니면 지금 아는 것을 지키려는 데 머물고 싶나요?"
이것은 개인에게 주도성과 기업가적 태도를 요구한다. 단순히 변화에 끌려가지 말고, "내 직업의 다음 버전은 무엇일까?", "나는 그 버전을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는 직무 간 장벽을 낮추는 일이 중요하다. 몰리는 한 디자인 책임자가 직접 제품을 만들고 코드까지 배포하고 싶어 했지만, 엔지니어링 조직이 "디자이너는 배포하면 안 된다"고 막았던 사례를 든다. 물론 금융처럼 안전성과 규제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의 역할 경계가 정말 여전히 필요한지, 혹은 단지 익숙해서 남아 있는 것인지 재검토해야 한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제품 관리자 사이의 장벽 일부는 허물어져야 합니다.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 변화는 직업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을 더 넓은 방식으로 발휘하라는 뜻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을 더 깊이 만들고 검증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마케터는 코드 배포까지 할 수 있으며, 기자는 거대 언론사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유통과 사업 모델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8. 절대 넘기지 말아야 할 레고: 비전, 판단, 신뢰, 책임
레니는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을 꺼낸다. "AI에게 넘기지 말아야 할 레고가 있는가?" 이것은 과거 몰리의 조언과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이다. 과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는 대체로 "넘겨라"가 좋은 답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분명히 넘기지 않아야 할 일도 있다.
몰리는 AI가 인간이 애초에 잘하지 못하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줄여 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운전은 규칙, 시스템, 반복적 판단이 중요한 영역이므로 자율주행 기술이 인간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이 고유하게 잘하는 영역은 지켜야 한다.
그녀가 제시한 대표적인 인간의 몫은 다음과 같다.
- 판단과 전략: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우선할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일
- 비전과 취향: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지,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
- 신뢰와 관계: 사람 사이의 책임, 약속, 공감, 관계적 맥락이 필요한 일
- 품질 기준: 무엇이 훌륭한 결과인지 알고 평가하는 일
- 최종 책임: 결과가 실패하거나 해를 끼쳤을 때 책임지고 수정하는 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것을 인턴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특히 CEO가 전략을 AI에게 생성하게 한 뒤 그대로 복사해 조직에 보내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전략은 단순한 문서 작성 작업이 아니라, 조직의 방향과 판단을 담는 인간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레니는 이를 '인간 샌드위치'라는 프레임으로 정리한다. 맨 위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목표, 비전, 문제 정의, 원하는 세계의 모습을 결정한다. 가운데에는 AI가 있다. AI는 여러 초안을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반복 작업을 수행한다. 마지막에도 인간이 있다. 인간은 결과를 검토하고, 수정하며, 품질과 책임을 보장한다.
"위에는 인간이 '우리는 여기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중간에서 AI가 일을 하고, 마지막에 인간이 검토하는 겁니다. 인간 샌드위치죠."
몰리는 이 비유에 동의하며,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당분간은 "여름 인턴 무리"로 보는 태도가 적절하다고 말한다. 개인이 가진 강점, 감각, 통찰, 전문적 판단을 전부 로봇에게 외주화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어떤 것들에 정말 뛰어납니다. 그 강점을 이 이상한 로봇들에게 넘기지 마세요. 결국 그들은 여름 인턴들이니까요."
레니는 Airbnb와 Booking.com의 차이를 예로 들어 인간 비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Booking.com은 예약 전환율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압박감과 긴급성을 유도한다. 반면 Airbnb는 더 즐겁고 편안한 경험을 만들려는 방향을 선택했다. AI는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지 최적화할 수는 있지만, 어떤 세계와 경험을 원하는지 선택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은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향해 방향을 잡는 존재입니다."
9. 상실을 위한 장례식과 느린 이륙의 희망
두 사람은 AI가 가져오는 변화에 적응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을 슬퍼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엔지니어가 직접 코딩하던 즐거움, 디자이너가 전문성을 인정받던 방식, 큰 팀에서 함께 문제를 풀던 경험이 줄어든다면, 그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몰리는 때로는 그 상실을 위해 실제로 '장례식'을 치를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가끔은 어떤 것들을 위해 장례식이 필요합니다. 한동안은 그리워하고, 그다음에 무엇이 가능할지 물어봐야 해요."
"당신은 잃은 것을 깊이 슬퍼할 수 있고, 동시에 미래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AI 시대에 너무 빨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만 말하면, 상실감을 겪는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된다. 몰리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일의 방식에 대해 "그리웠다"고 말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한편 레니는 AI의 발전이 당장 통제 불가능한 초지능으로 폭발하는 빠른 이륙보다는, 사람들이 변화를 관찰하고 배우고 대응할 시간이 있는 느린 이륙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한다. AI 에이전트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할 때도 사람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책을 만들며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몰리는 특히 "이미 늦었다"는 분위기를 거부한다.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수십 개의 AI 에이전트를 운영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말은 불안을 키우지만, 실제로는 이제 막 첫 게임, 첫 이닝이 시작된 수준이라고 본다.
"이제 첫 이닝이에요. 초보자와 전문가 사이의 거리는 지금 아주 짧습니다."
AI 도구는 오히려 신입이나 초보자에게 큰 기회를 줄 수 있다. 과거에는 숙련자가 되기 위해 수년간 쌓아야 했던 인프라 지식과 도구 사용 경험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도 지금의 도구를 잘 활용하면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고 실력을 키울 수 있다.
레니는 지금 가장 중요한 습관으로 매번 다음 질문을 던지는 것을 제안한다.
"이 일을 하는 데 AI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이는 무조건 AI에 맡기라는 뜻이 아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AI가 반복 업무를 줄여 줄 수 있는지, 사고를 확장해 줄 수 있는지, 더 나은 방식을 제안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새로운 사고 습관이다.
동시에 그는 더 큰 질문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AI가 이 일을 도와줄 수 있을까?" 다음에 물어야 할 것은 "이 아이디어에서 나는 어떻게 더 야심차게 될 수 있을까?"입니다.
다만 몰리는 야심을 단순히 더 많은 것을 빨리 출시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보완한다. AI 시대에는 수많은 제품과 회사가 빠르게 만들어졌다가 6개월, 12개월 만에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좋은가, 오래갈 가치가 있는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들일 만한가다.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좋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10. 관리자와 리더에게: 인간을 관리하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몰리는 지금이 특히 관리자와 리더에게 어려운 시기라고 말한다. 개인 기여자는 AI를 활용해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지만, 리더는 팀을 어떤 구조로 만들지, AI를 어디까지 쓸지, 구성원들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지, 무엇을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녀가 리더들에게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당신이 본보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리더가 AI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AI 결과물에 얼마나 책임지는지, 변화에 대해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가 팀의 행동 기준이 된다.
"당신이 하는 일과 행동 방식이 팀에게 '좋은 행동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둘째, 리더는 변화가 구성원의 마음과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이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라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이 줄어든다.
"이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전에 느꼈습니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많은 변화가 너무 빨리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리더는 AI 시대의 책임과 품질 기준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AI가 결과물 생성에 참여했더라도, 조직에 보낸 문서·코드·전략·의사결정의 품질은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AI를 썼다는 사실은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AI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과, 그 결과의 품질에 책임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만들었든 결과물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레니의 설문에서는 현재 직원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직속 관리자로 나타났다. AI의 발전 속도나 회사 전체 전략은 개인이 통제하기 어렵지만, 좋은 관리자는 구성원에게 존중받고 지원받는다는 감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몰리는 대기업들이 관리 계층을 줄이고 관리자를 없애는 흐름을 우려한다. 물론 비용과 효율의 압박은 이해하지만, AI 시대에 관리가 덜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좋은 관리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치 있고, 지원받고 있으며,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줍니다."
그녀는 인생에서 정말 좋은 관리자는 한두 명 만날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다며,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정말 좋은 관리자를 만나면 온 힘을 다해 붙잡으세요. 평생 한두 명밖에 못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11. 마무리: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인간답게 적응하기
대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지금이 혼란스럽지만 특별한 역사적 순간이라는 데 공감한다. 몰리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안에 있는 경험을 '허리케인 한가운데'에 있는 것에 비유한다. 모든 것이 날아다니고, 작은 문제에 휩쓸리기 쉽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잊기 쉽다.
그래서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더 큰 이야기를 봐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이 단지 현재의 직책이나 특정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나는 그 변화의 현장에 있었고, 무언가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역사를 살고 있습니다. 5년이나 10년 뒤에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떤 이야기로 들려주게 될까요?"
몰리는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불안 속에서 혼자 갇혀 있지 말라고 권한다. 리더든 실무자든 동료와 커뮤니티를 찾아 서로가 보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무엇이 과장인지 무엇이 진짜 기회인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슬픔 속에서 혼자 고립되지 마세요. 밖으로 나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아닌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레니는 이 에피소드를 사람들이 AI 활용법 같은 실용적 답을 찾으러 왔다가, 정작 자신도 몰랐던 감정적·인간적 필요를 발견하게 되는 '트로이 목마 에피소드'라고 부른다. 결국 이 대화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AI를 배워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과 책임, 관계와 기쁨, 그리고 상실을 애도할 권리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