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네이미스트이자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의 박재현 대표가 출연하여 '휘센', 'SK이노베이션', 'HD현대' 등 700여 개 브랜드를 탄생시킨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그는 브랜드 네이밍이란 단순한 창작(Creation)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소비자를 움직이는 치밀한 '설득 작업'이자 가치를 발견해 내는 '발굴(Finding)'의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본질적인 차이부터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언어 수집 습관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브랜드 통찰을 전합니다.
1. 브랜드 네이밍은 창작이 아닌 '완벽한 설득 작업'이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이름 하나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생존과 성공 가능성이 갈리는 시대라며, 700여 개의 브랜드 이름을 기획해 온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를 소개했습니다. 박 대표는 자신을 단순한 '작명가'로 규정짓기보다 브랜드의 시작부터 끝까지 돌보는 '브랜드 인사이터'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브랜드 네이밍을 크리에이션 작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설득 작업이다."
박 대표는 에어컨 브랜드 '휘센(Whisen)'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 'HD현대', '파르나스 호텔', 네이버의 전신 'NHN', 식품 브랜드인 '카레여왕', '쁘띠첼', '주부초밥왕' 등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이름을 탄생시켰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10여 개의 시안을 제시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단순한 어감의 좋고 나쁨을 넘어 '왜 이 이름이어야 하는가'를 증명해 내는 설득 전략이야말로 네이밍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 '휘센(Whisen)' 탄생 비화: 예비군 훈련장에서 캔 보석
과거 에어컨 시장은 '삼성 에어컨', 'LG 에어컨'처럼 사명 뒤에 제품명을 붙이는 방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든 가전을 다 잘 만드는 기업은 없다. 우리는 에어컨만 만든다"라며 등장한 전문 브랜드 '위니아(윈드+유토피아)'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습니다. LG전자는 이에 맞서 강력한 냉방력을 전달할 수 있는 독보적인 전문 브랜드를 원했습니다.
업계의 법칙상 선도 브랜드가 선점한 단어('윈드')를 그대로 차용하면 아류작 취급을 받기 때문에 윈드를 배제하면서도 시원함을 줄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납품 기한을 앞두고 고민하던 박 대표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산바람을 맞닥뜨리며 결정적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만화책을 보면 바람이 불 때 '휘~' 하는 효과음이 있잖아요. '아, 바람의 소리가 있었지!' 그 소리를 이름으로 쓰면 너무 좋겠다 싶었죠."
여기에 LG가 요구했던 강력함을 담기 위해 순우리말 '센(강한)'을 결합해 소리 나는 대로 '휘센(Whisen)'이라는 뼈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가전 브랜드로 채택되려면 글로벌한 어감과 논리적인 의미 부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두꺼운 영한사전을 샅샅이 뒤져 기적적으로 두 단어를 발굴해 냈습니다.
- WHI: 회오리바람을 뜻하는 'Whirlwind'
- SEN: 전달 장치라는 의미를 지닌 'Sender'
'회오리바람을 보내는 장치'라는 완벽한 설득 논리가 갖춰진 데다, 안데르센이나 아문센처럼 북유럽 느낌을 풍기며 쾌적하고 신뢰감 있는 고급 이미지를 연상시킨 덕분에 LG전자 경영진은 단 한 번의 프레젠테이션으로 휘센을 최종 낙점했습니다.
3. 대기업 사명 속 전략: SK이노베이션과 HD현대
기업의 사명을 짓는 작업은 더 거시적인 안목과 과감한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기존 주력 사업을 넘어 구체화되지 않은 미래 신사업까지 포괄할 수 있는 넓은 그릇의 단어가 필요했습니다.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는 흔히 쓰이지만 기업 사명에 전면 배치된 적은 없었습니다. 박 대표는 이를 과감하게 선점하도록 제안했습니다.
"만약 SK가 이노베이션을 사명으로 가져가게 된다면, 삼성도 이 단어를 못 쓸 거고 현대도, LG도 이 단어를 못 쓸 것입니다."
이러한 독점 효과를 강조한 설득은 적중했고, 고객의 물음표(AS)에 SK가 '이노베이션'으로 해답을 준다는 캠페인으로 이어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편 '현대중공업'에서 사명을 변경한 'HD현대' 프로젝트는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조선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환경 및 미래 산업으로 확장하려 할 때, 박 대표는 아무도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현대의 이니셜 'HD'를 전면에 내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수많은 계열사가 왜 너희만 HD를 독점하느냐며 반발할 것이 뻔했지만, 약 1년에 걸친 설득 끝에 지금의 현대 그룹 정체성을 대표하는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4. 마케팅은 'Buy Me', 브랜딩은 'Love Me'
김재원 아나운서가 지은 모임 이름 '오아시스(5명의 아나운서)'와 인원 추가로 탄생한 '오아식스' 일화를 들은 박 대표는 이름의 연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습니다. 연상성이 부족한 이름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광고비)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박 대표는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를 매우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
- 마케팅: "나를 사 가세요(Buy Me)"라고 외치는 직접적인 판촉 활동
- 브랜딩: "나를 사랑해 주세요(Love Me)"라며 팬덤과 애착을 형성하는 가치 구축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를 찍을 때만 해도 브랜딩이 안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들이 자비로 비행기 표를 끊고 와서 오디션을 보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브랜딩의 힘입니다."
이 기준을 '마당 밖 김재원' 채널에 대입해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마당 밖'이라는 표현이 대중에게 기존의 '아침마당'이라는 배경 자산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까지는 초반에 끊임없이 그 의미를 설명하고 환기해 주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네이버와 한게임의 결합체였던 'NHN'에 'Next Human Network'라는 새로운 철학을 부여했던 것처럼, 채널명에도 문학적이고 중의적인 메시지를 실어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5. 롱런하는 크리에이터의 무기: 언어 수집과 영감 💡
오랜 시간 업계 최고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로 박 대표는 망설임 없이 '언어 수집' 습관을 꼽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마음을 울리는 대사가 나오면 극장 밖으로 뛰어나가 메모할 정도로 일상의 문장들을 집요하게 모아 아카이브를 만듭니다.
"포르투갈 포르투의 한 술집 창문에 '우유로 친구를 만들 수는 없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대요. 저는 이런 언어를 보면 '언젠가 꼭 써먹어야지' 하고 메모합니다. 아이디어가 막힐 때 그 노트를 펼치는 거죠."
설득은 결국 '언어'로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언어 수집에서 나온다는 설명입니다. 김재원 아나운서 역시 "요즘 바쁘시죠?"라는 질문에 흔한 답변 대신 "일정이 좀 촘촘합니다"라는 감각적인 어휘를 써서 자신만의 지적 이미지를 브랜딩하고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영감이 뛰어난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유쾌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결론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 가치를 증명할 언어를 찾아내어 상대를 설득하는 인문학적 여정입니다. 좋은 이름 하나는 수억 원의 광고비 이상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일상 속 세심한 언어의 축적이 결국 매력적인 브랜드를 완성하는 가장 단단한 밑거름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