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그로서는 구글과 스트라이프에서 각각 약 10년씩 일한 뒤, 버셀의 COO로 합류해 AI 시대의 GTM(시장 진출·영업·마케팅) 운영 방식을 새로 만들고 있다. 그는 성장의 핵심을 무작정 인원을 늘리는 데서 찾지 않고, 제품·마케팅·세일즈·지원 조직을 하나의 고객 경험으로 통합하며 AI를 통해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드는 데서 찾는다. 동시에 기술 창업자와 2인자의 관계를 "직업적 결혼"이라고 부르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신뢰·예측 가능성·실행력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 돈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는 이유
진행자 주빈 미르자데건은 스트라이프에서 약 9년 넘게 일하며 직원 수가 약 400명에서 8,000명으로 커지는 과정을 경험한 잔 그로서에게 다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스트라이프의 최고사업책임자(CBO)까지 지냈고 경제적으로도 일할 필요가 없을 텐데, 왜 계속 일하느냐는 질문이다.
잔은 최고의 운동선수가 돈이 충분해도 경기를 계속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답한다. 자신이 아직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냈다고 느끼지 못했고, 직업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을 그만두면 지루할 것이며, 특히 급격히 변화하는 현재의 기술 환경에서 현장을 떠나 있으면 빠르게 무관해질 수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아직 경기장에 모든 것을 남기고 왔다고 느끼지 못한 거죠."
"문제를 해결하는 일, 지적으로 자극받는 일,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을 정말 좋아해요."
물론 그는 매일이 즐겁다고 낭만화하지는 않는다. 수요일보다 토요일이었으면 하는 날도 있고, 업무의 어려움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해결할 일"을 기대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새벽 2시에 깨서 업무를 생각할 때도 있다.
다만 새벽의 걱정은 낮에 보면 대체로 해결 가능한 문제처럼 느껴진다. 어떤 때는 아직 문제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체스처럼 한 가지 사안을 깊게 고민하고, 다른 때는 여러 걱정이 연쇄적으로 번지며 인생 전체가 불안해지는 듯한 생각의 고리에 빠진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느 것도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고 다 해결 가능해 보이는데, 새벽 2시에는 이상하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
벤처캐피털이나 자문 역할을 맡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잔은 자신을 본질적으로 '하는 사람(doer)'이라고 규정한다. 한 주가 끝났을 때 "내가 일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결과"를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있어야 만족한다는 것이다.
"제 만족감은 오늘 실제로 무언가를 앞으로 움직였는가에 연결돼 있어요."
그는 스트라이프를 떠난 뒤 고작 3일 쉬고 월요일부터 버셀에 출근했다. 스트라이프 재직 중에도 버셀에 자문을 하고 있었고, 본격 합류 전까지 약 1년 반 동안 창업자 기예르모 라우흐와 회사를 깊이 이해할 시간이 있었다.
2. 초고성장의 대가와 버셀 합류 직후의 변화
주빈은 고속 성장 기업에서 장기간 일하는 일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부담인지 사람들이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잔은 스트라이프에서 9년 이상 전력 질주한 뒤 버셀에서도 다시 빠른 성장의 열차에 올라탄 셈이다.
잔은 버셀 초기에 바꿔야 할 것이 많았고, 새로 온 사람이 상당히 큰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충분히 쉬지 못한 상태에서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느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공표한 날, 그는 1년 만에 가장 잘 잤다고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바꿀지 정하고, 사람들을 설득해 실제 변화가 실행되는 첫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사람들과 함께 실제로 그 변화를 만들 방법을 찾아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고성장의 삶을 계속된 고통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신제품을 내놓거나 중요한 프로젝트가 출발하는 주에는 침대에서 뛰어나가고 싶을 만큼 신나지만, 어떤 주에는 힘든 일이 에너지를 크게 빼앗는다. 그래도 대체로 어려운 구간을 지나면 다시 올라오는 고점과 저점의 반복이라고 설명한다.
버셀에서 그의 담당 영역은 사실상 모든 GTM 기능이다. 마케팅, 세일즈, 기술 영업(Field Engineering), 고객 지원, 파트너십을 총괄한다.
"고객을 접하거나 돈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면 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3. 제품 문제와 GTM 문제를 함께 검증하는 법
기술 창업자가 이끄는 회사에서는 제품이 좋아지면 "제품이 알아서 팔릴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대가 생기기 쉽다. 주빈은 이 때문에 성장 부진의 원인을 제품이 아니라 세일즈나 마케팅 탓으로 돌리기 쉬우며, 그래서 초기 기업의 CRO 재임 기간이 짧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다. 제품은 창업자의 정체성과 가깝기 때문에, 제품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잔은 이 의견에 강하게 동의한다. 성장 속도가 기대보다 느릴 때 가장 반복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이게 제품-시장 적합성(PMF) 문제인가요, 아니면 GTM 문제인가요?"
버셀에 합류했을 당시에도 회사 내부에는 "제품은 준비됐고, 문제는 GTM 실행"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잔은 제품 관리자와 리드 엔지니어를 데리고 기존 엔터프라이즈 고객 10곳을 연달아 만나게 했다. 고객의 피드백을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직접 듣고, 반복되는 패턴을 함께 발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버셀에는 엔터프라이즈 고객이 이미 있었지만 완전한 엔터프라이즈 PMF가 확보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더 쉽게 판매할 수 있도록 제품 측에서 보완해야 할 요소가 분명히 존재했다.
"10번의 대화가 끝난 뒤, 우리는 엔터프라이즈 제품-시장 적합성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데 모두 동의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부 고객이 이미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제품이 충분하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전을 보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구자 고객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과 GTM 조직이 같은 고객의 말을 듣고, 같은 현실을 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잔은 세일즈 미팅 뒤에도 창업자 기예르모에게 자신의 피치가 어땠는지 묻는다. 창업자가 제품을 설명하는 방식은 깊이 듣고 배우며, 반대로 제품 책임자와 엔지니어는 고객 앞에서 세일즈가 실제로 어떤 반론을 받는지 지켜봐야 한다.
버셀은 AI를 사용해 통화 기록에서 고객 반론을 추출하고, 해당 반론을 얼마나 잘 처리했는지 평가한다. 만약 세일즈 스킬이 아니라 제품 제공 범위의 빈틈 때문에 해결되지 못한 반론이라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제품 요청 항목을 생성한다. 즉, 고객 대화가 제품 개선으로 이어지는 자동화된 피드백 루프가 되는 것이다. 🤖
4. 창업자의 낙관적 예측을 운영 모델로 검증하기
주빈은 초기 스타트업의 영업 리더가 창업자의 매출 예측을 그대로 물려받으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창업자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이고, 투자자에게 꿈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큰 숫자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 규모, 영업 인력, 전환율, 실제 고객 계약 진행 상황 같은 근거가 없다면 그 숫자는 실행 계획이 아니다.
그는 한 초기 CRO에게 "올해 매출을 1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늘리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현재 파이프라인이 얼마인지조차 명확한 답을 받지 못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셀프서비스 제품이나 첫 미팅만 한 대형 계약을 매출 예측에 넣는 것은 특히 위험하다.
"창업자의 예측을 물려받고 있는 거예요. 창업자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이고, 사업을 예측하는 일은 대개 그들의 주력 분야가 아닙니다."
"제품 리더보다 당신이 먼저 해고될 가능성이 높아요."
잔은 스트라이프와 버셀 양쪽에서 기존 예측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입사했다. 그래서 새 회사에 오면 가장 먼저 운영 모델(operating model) 을 만든다. 이는 목표 매출을 달성하려면 무엇이 사실이어야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다.
버셀에서는 이를 리드-투-레비뉴 모델(lead-to-revenue model) 이라고 부른다. 지역, 고객 세그먼트, 파이프라인, 전환율, 계약 규모 등 전체 퍼널의 수치를 연결해 놓은 모델이다. 데이터가 완벽하지 않아도 합리적인 가정을 넣어 모델을 먼저 만들면, 목표 달성 여부뿐 아니라 무엇이 예상과 달랐는지도 알 수 있다.
스트라이프에서도 이미 존재하던 고객 매출은 비교적 예측 가능했지만, 새 고객 매출이 야심 찬 전체 목표와 기존 매출 전망의 차이를 모두 메워야 했다. 계산해 보니 필요한 파이프라인이 부족했고, 단순히 의지를 더하는 방식으로는 목표에 닿을 수 없었다. 이때 비로소 전략적 선택지가 드러난다.
- 마케팅 투자를 늘려 상단 퍼널을 키울 것인가
- 아웃바운드 영업에 투자할 것인가
- 더 큰 계약 규모를 위해 상위 시장으로 이동할 것인가
- 목표 자체나 달성 시점을 조정할 것인가
버셀 합류 몇 주 만에 열린 첫 이사회에서도 잔은 현재 궤적이라면 연간 목표를 맞출 수 없다고 솔직하게 제시했다. 첫 두 분기는 문제없어 보여도, 이후 분기부터 파이프라인 부족으로 성장 곡선이 꺾일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첫 두 분기가 잘 나온다고 안심했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대신, 계산을 하면 연초에 이미 그 위험을 예측할 수 있었어요."
그 분석 덕분에 그는 가장 먼저 CMO를 채용해야 한다는 우선순위를 정했다. 가장 큰 병목이 마케팅 파이프라인과 퍼널 상단이라는 사실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CMO를 90일 내 영입하고 레버를 조정한 결과, 버셀은 연말에 목표를 간신히 넘어설 수 있었다.
5. 입사 넉 달 만에 큰 변화를 실행한 이유
새 리더가 입사하자마자 기존 계획의 위험을 드러내고 큰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창업자에게도, 조직에 대해서도 민감한 일이다. 잔은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기예르모와 합류 전부터 약 1년 반 동안 쌓은 신뢰를 든다. 그는 합류 전 회사의 이사회 자료를 보고, 12명 이상을 인터뷰하며,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문제인지 폭넓게 이해했다.
잔은 회사를 고를 때 10년 단위로 생각했고, 기예르모 역시 1년 만에 교체할 임원이 아니라 변화까지 이끌 장기 파트너를 원했다. 따라서 양측은 기대와 우려를 숨기지 않는, 이른바 "오픈 키모노(open kimono)" 상태로 대화했다고 말한다.
"저를 채용한 이유는 와서 변화를 만들길 원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목표 숫자를 즉시 바꾸지는 않았다. 대신 그 숫자에 내재된 위험을 초기에 투명하게 드러냈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들을 실행했다. 다만 GTM 조직은 개인의 할당량과 보상에 직접 연결돼 있어 아무 화요일에 갑자기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연초나 반기 단위처럼 영업 계획을 마감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 적합하다.
버셀에서는 입사 약 4개월 반 만에 많은 변화를 실행했다. 원래라면 조금 더 천천히 했을 수도 있지만, 6개월을 기다리면 3분기 한가운데가 되어 실행이 더 어려워질 상황이었다. 경영진은 단기적인 하락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이후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함께 결단했다.
"단기적으로는 골이 생길 수 있어도, 반대편으로 나와 다시 가속할 수 있도록 지금 베팅하자는 데 뜻을 모았어요."
변화 이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잔도 다시 잠을 잘 못 잤다. 아무리 설계를 잘해도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 없고, 실행하고 나서야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몇 주가 지나면서 변화의 방향은 옳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의 관점에서 운영은 완벽한 설계가 아니라, 불완전한 실행 속에서 빠르게 학습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6. 10년을 머물 회사를 고르는 세 가지 기준
잔은 구글에서 약 10년을 근무한 뒤 시리즈 B 스타트업으로 옮겼지만, 그 회사는 자신에게 완벽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왜 구글을 떠났는가"는 알고 있었지만, "왜 구글에 10년이나 남았는가"를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 회사를 고를 때에는 다시 10년을 보낼 수 있는 곳인지 판단하기 위한 세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 명확한 가치관이 있고, 실제 의사결정에 사용되는가
- 충분히 큰 시장과 자연스러운 확장 영역이 있는가
-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어 하는 진짜 기술자들이 있는가
첫 번째는 회사의 가치관이 단순히 벽에 붙은 문구가 아니라, 온보딩·전사 미팅·성과 평가·일상 언어 속에 실제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그 가치관이 자신의 기준과 자연스럽게 맞아야 한다.
두 번째는 10년 동안 계속 흥미로운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큰 시장과 인접한 확장 가능성을 뜻한다. 하나의 좁은 제품에 갇히지 않고, 성장하며 새 과제를 계속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특히 GTM 인력에게는 다소 독특한 기준일 수 있다. 잔은 단순히 평균적인 기능을 구현하는 조직보다, 엔지니어가 어려운 일을 해내고 싶어 하는 회사에 끌린다. 구글에서 Gmail이 1GB 저장공간을 제공해 시장을 놀라게 했던 시절을 경험한 그는, "벽을 뚫고 나가서라도 어려운 것을 만들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저는 어려운 것을 만들 사람들을 원했어요."
이 세 기준이 그를 스트라이프로 이끌었고, 스트라이프에서도 10년 가까이 머물게 했다. 버셀 역시 같은 조건을 충족했다. 가치관이 명확했고, 온보딩부터 성과 관리까지 실제로 적용되고 있었다. 시장은 매우 넓었으며, CDN·보안·AI 등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잔은 버셀의 장기 가능성을 아주 큰 문장으로 표현한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인터넷의 모든 픽셀은 이론적으로 버셀 위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느꼈어요."
또한 버셀은 오픈소스를 중심에 둔 회사이며, 다른 개발자들이 사용할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잔은 이런 환경이 자신을 계속 혁신의 올바른 편에 두어 줄 것이라고 본다.
7. CEO가 아닌 강한 2인자를 선택한 이유
주빈은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가 창업자가 되고 싶어 하듯, 많은 임원이 자연스럽게 CEO 자리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잔은 버셀에 합류할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역할은 기술 창업자의 강력한 오른팔, 즉 '넘버 2' 였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기술적 비전을 사람들이 실제로 구매하는 사업으로 바꾸는 일을 좋아한다. CEO가 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창업자의 기술적 방향성을 시장·고객·매출로 번역하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저는 기술적 비전을 사람들이 사는 무언가로 바꾸는 일을 좋아해요."
다만 책임의 범위는 충분히 넓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출 결과가 다른 조직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실행력에 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케팅·세일즈·지원이 따로 움직이는 구조라면 한 조직이 다른 조직을 탓하기 쉽지만, GTM 전체를 맡으면 파이프라인 부족도, 고객 경험의 단절도 결국 자신의 책임이 된다.
그는 사람이 만나는 고객 경험도 제품의 일부라고 본다. 그런데 많은 회사가 마케팅, 세일즈, 지원을 서로 다른 임원에게 분산시키면서 고객에게 일관되지 않은 경험을 제공한다. 지원과 세일즈의 고객 세분화 기준이 다르거나, 마케팅이 돈을 쓰는 곳과 영업팀이 인력을 배치하는 곳이 어긋나는 일도 흔하다.
"마케팅, 세일즈, 지원이 따로 움직이면 통합된 고객 경험을 만들 수 없어요."
버셀에서 이 모든 기능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은 부담이지만, 동시에 고객 여정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8. 창업자와의 관계는 '직업적 결혼'
주빈은 임원이 회사를 평가할 때 창업자와의 관계가 다른 모든 요소보다 열 배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잔도 강하게 동의한다. 그와 기예르모가 처음 관계를 쌓을 때부터 이 관계를 "직업적 결혼(professional marriage)" 으로 정의했다.
"우리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거예요. 그러니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이견을 낼 수 있어야 해요."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는 정기적으로 함께 쓸 시간이다. 모든 창업자가 정기 1:1 미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 미팅으로 하루 9시간 이상을 보내는 잔에게는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칠 시간을 기다리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합류 초기에 정기 1:1을 명확히 요구했다.
또한 저녁 식사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30분짜리 1:1은 쉽게 거래적이고 업무적인 대화가 되지만, 2시간 정도 함께 식사하면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주제, 개인적 맥락, 장기적인 고민까지 더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버셀의 경영진 팀이 매우 솔직하고 비정치적이며 서로를 돕는 문화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창업자로부터 받는 피드백에 어떤 공통 패턴이 있는지, 각자 어떤 관계와 맥락을 쌓아 왔는지를 경영진끼리 비교하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빈은 자신처럼 정기 1:1을 싫어하는 창업자도 많다고 인정한다. 그는 "문제가 있으면 그냥 나를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지만, 잔은 실시간 슬랙 메시지로 복잡한 사안을 던지는 방식이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당신이 슬랙에 복잡한 일을 툭 던지면, 저는 왜 당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일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지 설명할 맥락을 만들어야 해요. 그런 대화는 절반쯤은 슬랙에 어울리지 않아요."
즉, 즉시 처리할 일은 즉시 처리하되, 충분한 맥락과 사고가 필요한 전략적 주제는 별도의 대화 공간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9. 창업자의 '디테일 투하'와 신호·잡음 구분하기
창업자가 책임을 위임한 뒤에도 세부 사항을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주빈은 창업자들이 통제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일을 넘긴 뒤에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소한 것까지 이 사람이 신경 쓰고 있나?"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사 미팅 슬라이드의 직함 표기, 이메일의 문법, 사소한 문서 형식 같은 것에 갑자기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보내는 창업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관찰 중 하나일 뿐이지만, 받는 사람은 "당장 모든 일을 멈추고 처리해야 할 정도로 화가 난 건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보내는 사람의 톤과 받는 사람이 느끼는 톤은 대개 같지 않아요."
잔은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 일종의 '수석 참모'처럼 즉시 대응해야 할 때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진짜 임무는 수십억 달러 사업을 만드는 것이므로, 매번 작은 세부 사항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핵심은 신호와 잡음의 구분이다.
"제가 알아내려는 건 신호와 잡음의 차이예요."
가령 문법 오류를 두 주 동안 세 번 지적받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쉼표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반의 글쓰기 품질 문제일 수 있다. 혹은 창업자가 유난히 자주 언급하는 사안이라면, 그가 실제로 깊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일 수 있다. 우선순위가 다르면 직접 대화해 창업자는 P0라고 보는 사안이 자신에게는 P2인 이유를 조율해야 한다.
잔 역시 팀에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며, 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의 행동이 예측 가능하도록 노력한다. 팀원이 "그건 잔이 원래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야"라고 느낄 수 있어야지, 매일 다른 기분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피드백 폭탄이 쏟아지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운영자의 역할을 다음처럼 정의한다.
"운영자의 일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예요. 제 경우 그 결과는 매출이고요."
따라서 운영자는 당장 거슬리는 일이 정말 최우선 과제인지, 회사 시스템을 다음 단계로 옮기는 데 필요한 일인지 계속 판단해야 한다. 물론 그도 문서를 보면 쉼표를 고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개인적 습관이 있다고 웃으며 인정한다. 😄
10. AI가 만든 '슬롭화'와 인간의 판단력
주빈은 AI가 만든 문서와 슬라이드가 점점 비슷해지고, 대충 정리된 자료가 넘쳐나는 현상을 "모든 것이 슬롭화(sloppification)되고 있다" 고 표현한다. 예전에는 글에서 과도한 긴 대시가 AI 문체의 신호처럼 보였다면, 이제는 AI가 만든 데크도 비슷한 시각적 형식과 문장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는 영업팀이 복잡한 원자료를 클로드 같은 AI에 요약시켜 그대로 팀이나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을 경계한다. 세일즈의 중요한 역할은 단순 요약이 아니라,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종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신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예요. 실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종합하는 것, 그게 세일즈죠."
"제가 읽고 싶지 않은 자료라면 고객은 더더욱 읽고 싶지 않을 거예요."
잔도 AI 문서의 부자연스러운 어조를 지적한다. 임원 고객과의 미팅 준비 문서가 "이건 정확히 이런 유형의 통화다. 팔지 마라" 같은 명령조로 작성될 때가 있는데, 실제 사람이 동료에게 보낼 법한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맥락과 강조할 포인트는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팔고 싶으면 팔 거예요."
이 대화의 핵심은 AI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AI가 리서치, 반복 업무, 정리, 분석을 맡을 수는 있지만, 고객의 맥락을 읽고 무엇을 전달할지 결정하는 사람의 판단과 책임까지 자동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11. 실행 문화와 '재귀적 창업자 모드'
주빈은 창업자 혼자 회사의 추진 엔진이 되어서는 안 되며, 경영진 전체가 창업자 수준의 강도·자율성·실행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버셀의 '재귀적 창업자 모드'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잔은 버셀이 오래전부터 실행 편향이 강한 회사였다고 설명한다. 회사의 대표적 구호 중 하나는 "그냥 배포하라(You can just ship things)"이며, 조직 어디에서든 실행이 시작될 수 있다. 신입사원도 입사 첫 주에 무언가를 배포할 것으로 기대받는다.
"버셀에 새로 들어오면 첫 주에 무언가를 배포할 것으로 기대받아요."
버셀은 오픈소스에 뿌리를 둔 회사라서 일하는 과정이 공개적이다. 사람들은 서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보고, 의견을 남기며, 피드백을 받는 데 익숙해야 한다. 이런 문화는 높은 자율성을 주는 동시에 높은 책임을 요구한다.
"안 되면 그 뒤처리는 당신이 해야 하죠. 그래도 한 달 동안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다, 해보고 반복하는 편이 낫습니다."
여기서 연결되는 또 다른 버셀 가치가 '위대함을 향한 반복(Iterate to Greatness)' 이다. 완벽한 답을 오래 기다리기보다 먼저 실행하고, 결과를 보고 개선하는 방식이다.
12. 효율은 레버리지지만, 지나친 긴축도 위험하다
버셀은 잔이 합류했을 때 약 600명이었고, 약 1년 반 뒤 800명 이상이 됐다. 매출은 세 자릿수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다. 잔은 스트라이프와 구글, 버셀 모두에서 매출이 매우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인력은 상대적으로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회사를 선택해 왔다고 말한다.
스트라이프에는 한때 "효율은 레버리지(Efficiency is leverage)" 라는 가치가 있었다. 가능한 한 린하게 운영하고, 문제에 사람을 무작정 투입하지 말며,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자는 원칙이었다.
흥미롭게도 스트라이프는 약 18개월마다 회사 가치관을 다시 검토했다. 성장 단계가 달라지면 이전에 유효했던 가치가 다음 단계에서는 오히려 성장 속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게 해준 방식이, 다음 단계까지 데려다주지는 않을 수 있어요."
효율 중심의 원칙은 우선순위를 깊게 고민하게 하고, 자동화·데이터·프로세스 개선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지나친 린 운영이 오히려 성장의 병목이 될 수 있다. 스트라이프도 실제로는 인력을 더 늘렸다면 매출을 더 빨리 키울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잔은 인정한다.
주빈은 반대편 사례로 루브릭의 성장 방식을 소개한다. 초기부터 영업개발인력(BDR)을 적극 채용해 회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수요와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보며, 시장에서 얼마나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혼란이나 조정 기간이 오더라도, 먼저 시장에서 '관련성 있는 회사' 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잔은 과도한 채용의 비용도 분명하다고 본다. 매출 문제가 없더라도 역할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발을 밟고, 조정 비용이 증가하며, 새로 온 사람 비율이 너무 높아져 전체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는 항상 조금 더 린한 쪽에 가깝지만,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밀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셀은 각 GTM 기능의 이론적 최종 인력 구조를 고민하고 있다. 어떤 기능은 지금 10명이고 앞으로도 10명으로 충분할 수 있고, 어떤 기능은 해마다 2명 정도만 추가하면 될 수 있으며, 또 어떤 기능은 매출과 함께 비선형적으로 커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 수를 당연한 변수로 놓지 않고, 성장 곡선의 모양 자체를 바꿀 방법을 묻는 것이다.
13. 인원수는 성공의 지표가 아니라 입력값이다
주빈은 사람을 많이 뽑는 일이 매우 유혹적이라고 말한다. "올해 인원을 7배 늘렸다"고 말하면 성공처럼 들리고, 더 많은 조직을 관리하는 데서 또 다른 복잡성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가치 평가액처럼 실제 사업 성과와 분리된 성공의 대리 지표가 될 위험이 있다.
"정말 훌륭한 PMF가 있어서 성장하는 건지, 아니면 인원수를 성장의 대리 지표로 써서 기분 좋아지고 싶은 건지 확인해야 해요."
잔은 AI 시대에 리더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도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존에는 "500명 조직을 운영한다", "1,000명 조직을 관리한다"는 식의 제국 건설이 리더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실제 산출물, 즉 매출·영향력·고객 가치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람은 입력값이에요. 앞으로는 '1,000명을 관리했는가'보다 '매출 대비 인원 비율이 어땠는가'를 묻게 될지도 몰라요."
그는 실제로 팀을 이끌 사람을 채용할 때, 어떤 역할은 개인 기여자 한 명이 AI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고 그 아래에 팀을 만들 필요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에도, 단순히 채용 인원을 늘리라고 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가장 적은 인원으로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 팀이 될 수 있나요?"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진짜 압박이자, 더 어려운 성장 방식이다. 사람을 많이 채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선택일 수 있지만, 소수의 팀으로 더 큰 결과를 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훨씬 높은 수준의 사고를 요구한다.
14. 빠른 성장에서 무너지는 것: 세분화와 전문성 부족
주빈은 빠르게 매출을 비선형적으로 키울 때 무엇이 흔히 깨지는지 묻는다. 잔은 GTM 관점에서 회사가 성장하며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면, 처음에는 통하던 일반적인 판매 방식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된다고 답한다.
스트라이프 초기에는 고객 세그먼트가 두 개 정도였고, 조직도 계정 임원(AE)과 계정 관리자(AM) 중심으로 단순했다. 기술 영업, BDR 같은 전문 역할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상위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고객 대화는 훨씬 기술적으로 변했다. 다른 시스템에서의 이전(migration), 규제 산업 진입, 특정 업종의 고유한 요구사항 등은 모두 이전과 다른 판매 방식과 전문성을 요구한다.
"성장하다 보면 더 일반적인 세일즈가, 새롭게 열린 시장에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게 됩니다."
잔은 스트라이프에서 "6개월마다 GTM 진화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큰 조직 개편을 갑자기 하는 대신, 시장이 요구하는 다음 단계의 전문화로 계속 조금씩 발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산업에 맞춘 버티컬 조직을 만들거나, 더 복잡한 기술 대화를 할 역할을 추가하는 식이다.
버셀도 비슷하다. 이커머스 기업에 버셀을 판매하는 방식과 일반 기술 기업에 판매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회사는 최근 이커머스 버티컬을 별도로 구성했다. 이는 성장할수록 세일즈가 더 일반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교한 세분화와 전문화가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15. AI가 줄인 팀과 더 고도화된 역할
버셀은 AI를 실제 GTM 운영 전반에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특히 BDR, 고객 지원, RevOps 같은 조직을 과거보다 훨씬 린하게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지원의 경우 버셀은 많은 문의량을 처리하지만, 그중 91%를 에이전트가 해결한다. 인바운드 리드의 자격 검토도 에이전트가 맡고, 아웃바운드 활동의 상당 부분도 에이전트와 함께 수행한다.
"버셀 지원 문의의 91%는 에이전트로 해결합니다."
그 결과 남은 고객 지원팀의 역할은 단순 티켓 처리에서 크게 바뀌었다. 이들은 실제 제품 문제를 찾아 엔지니어링 팀과 긴밀히 협력하며, 어떤 경우에는 직접 PR(Pull Request)을 작성해 문제를 고친다.
"이제 지원팀은 티켓을 계속 처리하는 대신, 진짜 제품 문제를 찾아내고 엔지니어와 함께 해결해요."
BDR 역시 단순 반복 발신 업무에서 벗어난다. 더 복잡한 엔터프라이즈 잠재 고객 발굴을 하거나, 새로운 영업 메시지와 플레이의 가설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RevOps도 데이터 과학 에이전트를 통해 상당 부분 효율화됐다. 잔은 이제 과거에 RevOps 팀에 물어봤을 법한 질문을 데이터 과학 에이전트에 바로 물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일즈 생산성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할당량 인상이 모두 AI 덕분인 것은 아니다. 제품 성숙도와 시장 준비도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버셀은 매 반기마다 영업 할당량을 올리고 있으며, 인원 대비 매출 비율도 의미 있게 개선되고 있다.
과거에는 "매출 1,000만 달러를 더 원하면, 100만 달러 할당량의 영업사원 10명을 더 뽑는다"는 식의 사고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명당 목표를 100만 달러에서 150만 달러로 높일 수 있다면, 같은 목표를 위해 10명을 늘릴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는 1,000만 달러가 더 필요할 때, 한 사람의 생산성을 100만 달러에서 150만 달러로 올려 인력을 덜 늘릴 수 있어요."
영업사원 모두가 할당량 인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잔은 버셀에 합류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대적 기업을 만드는 일과 AI 시대의 GTM 플레이북을 함께 쓰고 싶어서 왔다고 믿는다.
"제가 버셀에 있는 큰 이유는 이 시대의 GTM 플레이북을 쓰고 싶기 때문이에요."
16. AI 시대에 달라지는 채용과 인재상
AI가 GTM 조직의 구조를 바꾸더라도, 잔은 모든 역할의 인재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버셀은 GTM 조직 안에도 전직 창업자를 꽤 많이 채용한다. 특히 BDR 조직에는 기술적 배경을 가진 전직 창업자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창업에 실패한 뒤, 고객 발견과 고객 대화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일즈로 전환했다. 버셀에서는 BDR을 거쳐 계정 임원으로 갈 수도 있고, 기술 역량을 살려 솔루션 아키텍트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내부 이동 프로그램에서 BDR 출신 인력이 AE가 된 수만큼 솔루션 아키텍트가 된 사례도 있었다.
이는 AI 시대의 GTM 인력이 단순 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 문제를 이해하고 기술과 사업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복합적 문제 해결자가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주빈은 일부 창업자가 영업사원 채용 과정에서 지나치게 복잡한 인지 테스트나 퍼즐 문제를 내는 것을 비판한다. 항아리에 구슬이 몇 개 들어 있는지 추정하는 류의 문제가 실제 영업 성과와 상관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잔도 공감하며, 엔지니어 중심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면 지원자도 어느 정도 그 문화와 기대를 이해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17. 마무리: 그릿은 고통을 견디는 능력
인터뷰 마지막에 주빈은 '그릿(grit)'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묻는다. 잔의 답은 짧고 명확하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요."
이 답은 인터뷰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한다. 잔 그로서가 말하는 성장은 무조건 빠르게 사람을 늘리는 일이 아니며, 창업자의 낙관을 그대로 따르는 일도 아니다. 제품과 고객의 현실을 함께 보고, 숫자로 위험을 드러내고, 어려운 변화를 실행하며, AI로 반복 노동을 줄인 뒤 인간이 더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버셀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더 효율적인 GTM 조직이 아니라, 작은 팀이 더 큰 결과를 내고, 실행과 학습을 반복하며, 기술적 비전을 실제 시장의 가치로 바꾸는 운영 시스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