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나빠지는 건 조용하게 진행된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운동을 빠지고, 패스트푸드로 떼우고, 그러다 어느 날 "요즘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싶은 순간을 만난다.
예전에는 그냥 컨디션 문제 정도로 넘겼다.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몸무게가 늘고 번아웃을 겪고 나니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건강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2021년에 애플워치를 산 뒤부터 많은게 달라졌다. 수면, 심박, 활동량, 심박 변동 같은 몸이 주는 신호를 수치와 그래프로 볼 수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앞당겼을 때 다음날 회복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운동 강도를 너무 높이면 업무시간에 어떻게 힘이 든지, 식사를 좋은 음식으로 챙기면 컨디션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몸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는데, 감으로 버티는 대신 작은 가설을 세우고 바꿔 보고 어떤 입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게 됐다.
"회사 일은 다 데이터로 실험하면서 왜 내 몸은 감으로만 관리하고 있었을까?"
스타트업에서는 지표를 보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결과를 보고, 다음으로 간다. 프로덕트를 만들 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이 과정을, 정작 내 몸에는 거의 적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 CGM(연속혈당측정기)을 붙여보다
애플워치로도 꽤 많은 걸 볼 수 있었지만 점점 더 내 몸의 많은 신호들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특히 생활 습관이 다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할 때가 그랬다. 수면 패턴이 깨지고, 운동이 줄고, 영양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보고 싶었다. 그럴 때 나는 CGM(연속혈당측정기)을 붙였다.
내게 CGM은 상시로 차고 다니는 장비라기보다, 세 달에 한 번 꼴로 부착하는 흐트러진 생활을 다시 조정해 주는 보정 도구에 가까웠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수면이 부족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반응이 달랐고, 전날 운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서도 식후 흐름이 꽤 달랐다. CGM을 붙이면 그런 차이가 분명하게 보였다. 생활의 밸런스가 깨질거 같은 느낌이 오면 나는 CGM을 붙이고 내 몸을 다시 선순환으로 돌리려 노력했다.
다만 이 루프를 자주 돌리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뇨가 없으면 보험 지원이 없고 CGM은 비용은 온전히 내가 지불해야 한다. 한 번씩 점검하는 용도로는 좋았지만, 내가 원했던 건 몇 달에 한 번이 아니라 훨씬 더 자주 내 몸의 방향을 읽는 일이었다.
"이미 Apple Watch는 심박, HRV, 수면, 활동 같은 신호를 하루 종일 보고 있는데, 여기에 영양 섭취 정보를 더하면 모델로 CGM 없이도 어느 정도 쓸 만한 대사 추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손목에서는 심박, 수면, 활동, 심박 변동 같은 신호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내가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얹으면, 비싼 CGM을 계속 다시 붙이지 않더라도 대사 상태를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2. 논문들을 모아 보니 허황된 생각은 아니더라
처음엔 막연했지만 관련 논문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흥미가 더 생겼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에서 들어오는 신호와 식사 정보를 함께 보면, 사람의 식후 반응이나 혈당 흐름을 꽤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연구는 심박과 활동, 수면 같은 익숙한 신호를 썼고, 어떤 연구는 피부 온도나 광학 신호까지 넓게 활용했다. 몸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그 신호들을 잘 엮으면 대사를 어느 정도 읽어볼 수 있다는 쪽이었다.
예를 들어 식사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고, 수면은 다음날 식후 반응에 꽤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각각의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들을 따지고 논문의 인용수와 등급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했다. 어떤 신호를 먼저 믿고 어떤 신호는 조심해서 봐야 하는지를 따져봤다.
식사에서는 무엇이 중심인지, 웨어러블에서는 어떤 신호가 더 믿을 만한 단서인지, 또 어떤 것들은 결과에 가까운지 나름대로 구조를 잡기 시작했다. 식사에서는 탄수화물 및 당류 섭취, 먹는 순서가 중요했고, 웨어러블 쪽에서는 심박, 심박 변동, 수면, 활동이 반복해서 의미 있는 단서로 나타났다. 특히 식후 바로 걷는 것과 전날 운동을 해둔 상태가 몸에 남아 혈당에 영향을 끼쳤고,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은 같은 음식도 몸이 더 힘들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3. 직접 추정 모델을 만들어보다
그다음 내가 한 일은 논문에서 본 관계들을 바탕으로, 손목에서 들어오는 신호와 내가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를 함께 넣으면 지금 몸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머신러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논문 기반 예측 모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중요한 건 결과였다.
"이게 내 삶에서 실제로 쓸 만한 도구가 되는가."
처음부터 코드를 작성한건 아니고 모델의 동작에 대한 스펙을 LLM과 구체화했다. 어떤 신호를 넣을지, 무엇을 더 중심에 둘지, 무엇은 참고용 단서로 볼지를 무조건 논문에 근거하여 정하도록 했다. 이 초기 모델에 내가 손가락에서 피를 뽑아 확인한 값이나, CGM을 붙였을 때 보이던 흐름과 새 모델이 보여주는 방향이 제법 비슷하게 움직이는 구간들이 나왔다.
혈당 수치가 다 맞아 떨어질 수는 없지만 추이는 얼추 다 맞아 떨어졌다. 내가 언제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얼마나 어떻게 움직였는지, 지난 밤 수면의 질은 어땠는지, HRV로 스트레스 반응은 어떤지 등을 알면 나의 현재 대사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런 것 없이 혈당이라는 바이오마커를 측정하려니 피를 뽑고 CGM을 꼽고 비침습 기술 연구를 하고 했던 것이지.
여기에 내가 모아온 5년 간의 애플 건강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평가하고 보정해보니 패턴이 더 보였다. 어떤 것을 먹으면 식후에 혈당이 어느 정도 올라가는지, 혈당이 이유없이 이틀 정도 높으면 이후 아플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수면이 안 좋은 날에는 왜 같은걸 먹어도 혈당 스파이크가 오거나 늦게 혈당이 떨어지는가 하는 등이었다.
기뻤다.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오늘 내 몸이 평소와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빨리 읽어내는 것.

4. Garbage-In, Garbage-Out. What-If & Intervention.
오히려 초반에는 틀린 순간들이 더 많은 걸 가르쳐 줬다. 예를 들어 커피 같은 low-carb 이벤트에서는 탄수화물은 거의 없는데 심박이나 심박 변동 같은 신호만 보고 모델이 식후 반응처럼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차트를 보면 사람이 보기에는 분명히 어색한데, 모델은 생리 신호의 움직임만 보고 지나치게 크게 해석한 셈이었다.
겹치는 식사도 비슷했다.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고, 저녁이 조금 빨라진 날처럼 반응이 이어지는 날들이 있었는데, 초기 모델은 그걸 너무 단순하게 더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면 점수는 쉽게 치솟고 생각보다 오래 내려오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누적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지속적으로 revisit 하며 손봤다.
이 때 주효한 것은 모든 변경을 일단 논문에 근거하여 타당한 가설로 나열하고 그에 따라 접근한 것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내 5년치 데이터로 훈련하고 패턴찾고 평가하는게 아니라 이미 정제되고 가설로 정리된 논문들을 메타적으로 정리해 개선과 변경을 시도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AI 에이전트가 코딩 다음에는 과학과 연구에서 괄목할 성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되자 what-if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내 몸은 왜 평소와 다르지?"라는 질문에, 만약 어제 2시간을 일찍 잠에 들었다면? 점심 때 짜장면이 아니라 샐러드를 먹었다면? 아침운동 1시간을 인터벌이 아니라 존2로 했다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쌓이면 개입을 통해 다음 행동제안으로 이어지게 된다.
5. 다만 이걸 의료기기처럼 쓰면 안 된다
이 지점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논문 기반으로 범용적으로 접근하긴 했지만 이 모델은 나에게 보정되고 테스트 된 나에게 맞춘 개인화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이걸 의료기기처럼 쓰면 안 된다. 이미 당뇨가 있는 등 혈당이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에게는 오차가 훨씬 커질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는 틀린 신호가 위험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손가락 채혈이나 CGM처럼 직접 측정한 값을 대체하는 용도로 생각하면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도가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게 중요했던 건 병명 진단 보다 내 생활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읽어보는 일이었다. 수면이 무너진 며칠 뒤 어떻게 식후 반응이 달라지는지, 운동을 쉬면 왜 하루 전체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지, 어떤 식사가 나의 컨디션을 좋게 유지해주는지, 그 정도 질문에는 확실히 유용했다.
6. 지금이 재밌는 시대라고 느낀다
내가 이 모델과 앱을 만들면서 느낀 건 지금이 꽤 흥미로운 시기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몸을 이해하려면 병원에 가거나, 비싼 장비를 붙이거나, 전문가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손목에서 꽤 많은 신호가 들어오고, 그 신호를 읽는 데 도움을 주는 논문과 데이터와 AI/ML 도구들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
이 조합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지 혈당 하나를 추정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수면과 회복, 운동 준비도, 스트레스 반응, 식후 흐름처럼 예전에는 막연한 감으로만 느끼던 것들이 점점 더 읽을 수 있는 신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혈당뿐 아니라 더 많은 바이오마커와 더 좋은 개인화 모델이 붙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읽고 조정하는 루틴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미 애플이 고혈압 알림을 애플워치와 AI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FDA 승인 후 작년 부터, 한국에서는 식약청 승인 후 올해 2월 부터 서비스 중이다. 더 자주, 더 낮은 비용으로, 그리고 조금 더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내 몸을 알고 준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꽤 재미있다.